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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자기 집이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헬쓱했지만 몇 마디 간단하게 오가는 말에도 유머가 있었다. 눈이 작아지는 웃음이 보기 좋다. 가져올 것이 있다기에 잠깜 들리기로 했다. 그 집은 1층에는 정원이 있고 2층엔 1층이 훤히 보이는 사각의 빈 공간이 있었다. 중정이라고 하자. 2층은 그래서 중앙 내부를 뚫어놓았고, 복층 혹은 복도의 형식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곳을 두었다. 그 집에는 방이 하나도 없었다. 문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이상한 것은 그런 집들이 옆으로 몇 채가 더 있었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벽으로 다른 세대와 생활을 구분했다. 나는 이런 집을 처음 봐서 뿌듯해 하며 집을 보여주는 그에게 좋아보인다는 말을 못했다. 중정이 넓네요, 라는 말로 다음을 잇지 못하다가 등쪽에 채광이 좋다는 점을 발견했고, 빛이 많이 들어오네요. 라고 말을 이으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2층의 햇빛은 문을 하나도 거치지 않고 그의 집 구석구석에 들어왔다. 마루로 마감한 듯한 2층에는 아직 세간이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여기서 신혼집을 차릴 계획이라고 했다. 말간 얼굴에 해가 들어와 더 희망적으로 보였고, 그는 미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정원에 있다가 그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자신의 집을 소개해 주었던 그와는 실제로 일면식만 있다. 그를 그릴 수도 있고, 그가 다니는 직장 이름도 아는데 생각해보니 이름을 명확하게 외울 수가 없다. 나는 그가 청중이 100명쯤 되는 자리에서 모두를 웃기고 남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어젯 밤 1층에는 아무것도 없는 2층집인데 2층은 중앙이, 바닥이 없는 집을 소개해 주었고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그의 표정이 아무리 좋았어도 좀 불안한 일이었다. 작지만 바닥을 마련했어. 둘이 충분히 누울 수는 있어.
꿈에서 깨고, 출근했다.
아마도 그에겐 비어있는 바닥이니,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 것 같다. 불안해 보이는 출발이나 미래 같은 것들, 그런걸 기다리고 있는 표정을 보고 별 말을 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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