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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이근화

_봄밤 2014. 12. 22. 23:20







이근화



내가 뼈가 될게

돼지의 말씀의 가로등의

환한 뼈

전투적인 머리카락의 검은 뼈


마네킹은 온몸이 뼈처럼 서 있군

유리를 긁으며 소리 없이 웃는다

오후의 마네킹은 모래언덕 같은데?


독자리 바구니 자전거에는 뼈가 없고

밤으로 가는 열차에서는 뼈가 녹아


뼈가 될게 새벽에는

참새의 부리가

지렁이의 뼈를 부러뜨린다


새벽부터 밥을 먹으니

내가 튼튼해지는 것 같아

내 뼈를 공원으로 수영장으로 이동시켜줘


잉어들이 바닥에 수염을 꽂고

지느러미를 떼어내며 욕하는 것 같은데?

뼈의 굵기나 길이는 중요하지 않거든


시계가 뼈를 벌리며 하루를 완성해

종소리가 귀에 뼈처럼 꽂혀

내가 여기 서 있을게

자라서 뼈가 될게







이근화, 『우리들의 진화』, 문학과지성사, 2009.



동짓날은 밤보다 팥죽을 먹던 놀이가 생각난다. 놀이는 끝났고, 동지는 계속 돌아온다. 아무 근심없이 되바라지게 자라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 어느집 외동딸을 생각한다. 그렇게 웃었던 내가 있었다. 


이근화라는 시인이 좋다. 가끔은 어떻게 이렇게 쓸까, 감탄에 말도 나오질 않는다. 그동안 그녀의 시집에 아무말도 못했구나. 지나간 나에게, 나의 오래된 얼굴에게. 적어둘 말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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