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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주체-이현승

_봄밤 2014. 11. 11. 00:43



까다로운 주체





이현승




당신은 웃는다.

당신은 종종 웃는 편인데

웃음이 당신을 지나간다고 생각할 때

기름종이처럼 얇게 떠오르는 것.


표정에서 감정으로 난 길은

감정에서 표정으로 가는 길과 같겠지만

당신이 화를 내거나

깔깔깔 웃겨죽으려 할 때에도

나는 당신이 외롭다.


도대체가 잠은 와야 하고

입맛은 돌아야 한다.

당신은 혼자 있고 싶다고 느끼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곳은 어디인가

외롭다고 말하는 눈,

너무 시끄럽다고 화를 내는 입술로

당신은 말한다.

그렇게 당신은 내가 보이지 않는다.


포기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삶을 지속하는 유일한 조건이 된다.


나는 웃음이 당신을 현상한다고 느낀다.




이현승, 『친애하는 사물들』, 문학동네. 2012.







이 시집은 무척 초록인데, 나는 이 초록이 좋다. 눈이 아프지 않은 초록이고, 싱그러운 초록이고 다정하게 말을 거는 초록이기 때문이다. 시집의 초록에는 손이 아직 남아있다. 시집 뒤에는 두 개의 날짜가 써 있다. 한 쪽은 맞고 한 쪽은 틀릴텐데 어쩌면 둘 다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불리고 싶은 이름이 있고 그런 목소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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