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박3일-김행숙

_봄밤 2014. 11. 9. 18:23




2박3일




김행숙





 상상해봐.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중에서 사랑으로

살 수 없는 것만! 오랫동안 상상만 한 겨울 바다야.

사진처럼 물방울이 허공에서 얼어붙는 추운 날씨야.


 그런데 걜 혼자 두고 온 게 맘에 걸려. 이곳은 좋

은 곳. 우리는 쉽게 부서지는 파도 끝에서 장난을 친

다. 물에 빠지고 싶지 않고, 풍덩 물에 빠지고 싶어.

어느 쪽도 좋구나. 좋지 않니? 이곳에서는.


 하얀 이빨처럼 보이는 게 좋다. 잡아먹을 듯 으르

렁거리는 게 좋다. 이빨이 부서지는게 좋다. 히히,

잡아먹을 테면 잡아먹어봐라. 도망칠 수 있는 게 좋

다. 이곳엔 좋은 일뿐이구나. 나는 진짜 좋은 아빠

같구나. 나는 진짜 좋은 엄마 같구나.


 바다 한가운데 우리 집이 있다. 잠잘 때도 보트에 

서 물 푸는 기분으로 반쯤 깨어 있어라. 무엇이 바다

처럼 넓겠어요? 무엇이 바다처럼 깊겠어요? 오늘은

다른 기분을 돈 주고 산거예요. 숙박비와 교통비와

수족관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 값을 다 합친 것보다

비싼 거예요. 우리 거예요. 나는 모래 같은 파도 끝

을 만져봤어요. 나는 아는데 아빠는 모르는 것. 아빠

는 아는데 엄마는 모르는 것. 엄마는 아는데 나는 모

르는 것. 우리 모두 빙빙 도는 기분이 좋아요.


 걜 혼자 두고 왔어요.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면 없

어지는 마술, 불끈 그런 힘이 생겼어요! 금요일 저녁

부터 일요일 밤까지. 어제부터 내일까지. 아직 해가

뜨지 않는 날까지. 아직 해가 지지 않은 날까지 이곳

에서. 





김행숙, 『에코의 초상』, 문학과지성사. 2014.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가 산으로 간다_민구  (0) 2014.11.22
까다로운 주체-이현승  (0) 2014.11.11
나의 투우사-성동혁  (0) 2014.11.08
사람이 어떻게 시 없이 살 수 있습니까? - 이성복  (0) 2014.10.30
청혼-진은영  (0) 2014.10.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