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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사진 찍어도 될까? 라고 묻는 주저함이 보기 좋았다
파스타집으로 데려갔다. 찾아본 곳과 외관이 똑같았다. 한눈에 알아보았고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여기야. 하고 들어온 곳은 인기가 많아서 12시인데도 창가 자리가 다 찼다. 벽을 마주한 곳을 가리켜 앉았다. 테이블에는 왠 버너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특이한 가게로군. 메뉴판을 보니, 무척 간소했다. 간소하다 못해 "파스타"라는 메뉴가 없었다. 다시 보아도 떡볶이, 그리고 뭐였지. 떡볶이만 잔뜩 있어서, 떡볶이도 파는구나. 진짜 메뉴판을 달라며 점원께 여쭈었다. 허공에 네모를 그리며. 메뉴판 주세요. 메뉴판이요, 테이블 위에, 네, 그거요. 그게 메뉴판입니다. 이거요, 여기엔 파스타가 없는데요. 파스타요, 저희는 떡볶이. 전문점인데요. !?!!#@
나는 메뉴판을 다시 보고, 회색 티셔츠의 훤칠한 점원은 우리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디를 찾아오셨나요. 무안하지 않게 물어서 더 빨개진 얼굴로 그러니까 그 가게 이름이...잘 생각이 안나고요 아, 파스타집인데 외관이 같았는데요 하고 핸드폰 창을 같이 본다. 아, 이 가게요. 바로 옆집이에요. 하며 두 손으로 가르키는 곳. 이 문을 열고 나가서 만나는 문을 열면 그곳이었다. 죄송하다며, 정말 죄송하다며 테이블에 닿을 듯 내려앉는 얼굴을 손으로 받치고 점원은 허리를 테이블만큼 낮추어 괜찮아요, 맛있게 드세요. 하고 나가는 우리를 배웅했다. 어리둥절한 얼굴들. 창가를 채운 손님은 대개가 애띤 학생들이었다. 떡볶이집이었다니. 하며 앉은 의자는 가죽마감이 잘 되었고 하얀 셔츠를 입은 점원들이 입구를 마중했다. 자리를 안내하는 동시에 두꺼운 양장으로 마감한 메뉴판을 하나씩 가져다 주었다. 웃음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친구하게 사과하고는 뭐 먹을까 묻는다. 웃음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 파스타, 떡볶이도 맛있을 것 같은데. 하고는 무엇을 고른다. 고르는 사이 피자가 나오고,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소매를 꺼내고 얼굴을 오랜만에 마주해 앉았다. 여기서 너를 보네. 시간이 우리 앞에 도착했다. 그동안의 말없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대체로 마음을 여는 일은 연애어라. 어떻게 끝났는지, 잘했다. 두 번 잘했다. 미련은, 변명은 없는지, 후회는. 그런것을 말하고 지금은 어떤지, 앞으로는 어떨 것인지, 어렵지는 않았는지. 그런것은 없다. 라는 말로 고개를 끄덕이고 요새 어떻게 지내는지, 아침은 어떤지, 이 사람들 많은 곳에서 살만한지, 그래도 살이 붙었네. 다행이네 라는 말 사이로 포크를 따라 올라가는 파스타. 다행을 사이에 두고 달고 짠 피클, 그런데 떡볶이집은 왜 간거야. 다시 터지는 웃음. 바로 옆집인 줄 몰랐네. 가게 입구에 써있는 영자를 가리키며 내가 저걸 못봤나봐. 어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는 습관은 어쩜 일관된 것인지. 다시 시작되는 자학과, 따라오는 어쩔 수 없음과, 상황으로 미루는 고약한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너와 파스타를 먹는다. 진실은 저렇게 구불구불하고 툭툭 끊어져서 입속으로 들어간다. 어디가 진짜 마음이었고 어데가 진실에 빗댔던 거짓이었는지. 그런것을 입으로 다 먹어버리고 말 없다. 묻지 않는 입도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거니, 이해하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대공원으로 가는 길은 가을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사자가 있다는 말에 깜짝 놀라서 걸었고 이곳에 있으면서 봤던 애기들을 그때 대공원에서 다 본 것 같았다. 가족이었고, 연인이었고, 걷기 좋은 날씨였다. 사자를 보고, 호랑이를 보고, 표범을 보고 점점 무거워지는 마음은 설명하기 어렵고. 큰 공을 굴리기 대회를 보았다. 큰 공은 어른의 키만큼 컸다. 공을 굴리는데 여념이 없는 아빠, 아이가 굴리는 것을 보며 속도를 포기한 아빠, 뛰어가는 엄마를 잡기 위해, 엄마를 붙잡으며 뛰어가는 남자아이...여러명의 가족을 보았고 누구를 응원한다던가 그런 마음은 없었고, 대개는 아이가 잘 뛰어야 먼저 들어오는 경기 여러개를 보면서 좋구나, 하는 하품을 했다.
그리고 놀이기구를 탔다. 놀이기구라는게 있는 줄 몰랐는데 끝까지 가니까 나오더라,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타보자고 해서 도착했다. 정말로 놀이기구가 있잖아? 하나만 타고 가자고 들뜬 마음으로 표를 끊었다. 줄은 별로 길지 않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 느껴졌다. 삼십분쯤 기다렸을까, 손을 내내 놓고 소리지르는 걸 내내하고. 목이 다 쉬어서 내리고, 만족한 얼굴로 나왔다. 오랜만이야. 나도 오랜만이야. 나는 놀이공원을 가본 적이 없어. 대체 어떻게 살아온거야? 놀이공원을 피해오다니. 그렇게 됐어.
기다리며 찍었다. 색을 보여주니 그녀는 뭘 아는 것 같아. 라고 했다
한강은 벌써부터 추웠고, 온갖 곳에 드러누운 커플들로 눈이 아팠다. 곳곳에 텐트들, 그 안에 있는 개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고 여기저기서 퍼지는 짜장면 냄새, 치킨 냄새. 잔디밭이었고 멀리 한강이 흘렀고 강변음악회가 준비하고 있었다. 돗자리는 작아서 발을 피면 꽉 찼다. 원효세트는 다시는 안시켜 먹을거야. 치킨을 먹다가 감자튀김을 먹고 콜라를 먹다가 음악을 기다렸다. 멀리 두 개의 텐트 사이로 지휘하는 모습이 보였다. 칼을 휘드르는 듯 날렵했고, 왼손과 오른손이 각자 왼편과 오른편을 다 쥐고 흔들었고, 발을 구르고, 그런 모습이 보였다. 두근.
더 예쁜 불꽃은 내 눈에 담았다
몇 가지 얘기를 하다가 팔굽혀펴기를 매일 하고 잔다는 얘길 했고, 그게 진짜냐며 보여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한강 공원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하는 <윌리엄 텔>서곡에 맞춰 팔굽혀 펴기를 하니, 서로 껴안고 있는 커플들과 저쪽에서 짬뽕을 먹고 있던 가족들의 눈이 이곳으로 모였을거라. 아랑곳없이 진짜 제대로 하잖아?! 그럼. 하며 손을 털고 일어나는 몸. 얼마가 지나서 시작된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 연주의 끝과 함께 불꽃이 올랐고, 음악회가 끝났고 하루가 컴컴해졌다. 언제 보냐. 라는 말에 대답이 없었다. 잘 되서 올라올게. 내가 내려갈게. 나도 좋은 소식 줄게. 그런 말들로, 담담히 오늘을 닫고 지하철 문을 내리니 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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