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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여름이 다 마르기 전에

_봄밤 2014. 8. 30. 23:26



목포에서 찍은 사진이 나를 유혹한다. 친구, 어서 이야기를 달리자구! 


(그러나 아직 나주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우렁을 먹고 나와서 우리 기분은 한층 더 피곤해졌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식당에서 <하얀집>을 검색했기 때문이다.<하얀집>(나주의 곰탕맛집)은 우렁을 먹은 식당에서 불과 7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우렁은 거의 다 먹은 후였고, 해도 거의 져서 얼른 쉬어야지 그런 생각뿐이었다.


처음에 가기로 한 찜질방에서 어느덧 2km나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이 근처에 있는 다른 찜질방에 가기로 했다. 터미널 근처에 바로 있어어 오호라, 하고 올라갔다. 그러나 좀 이상했다. 보통 찜질방은 건물이 따로 있거나 못해도 삼층을 쓰는데 터미널 근처의 찜질방(이라고 생각했던)은 한 층 밖에 없었다. 좁은 엘리베이터에 자전거 두개를 구겨서 넣고 올라가자가마자 에구, 우리 찜질은 안해요~그대로 다시 1층 버튼을 누르고 내려왔다. 어쩔 수 없이 2km를 더 가야했다.


가는 도중에 길 헤맨 건 또 못 말한다. 무슨 공사중인 고등학교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이 없어서 왔던 길을 다시 타고 내려와야했다. 여차저차 도착하자, 이제는 나주 시내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우리의 말 수는 참담했다. 세지 못 할 지경이 되었고 알아서 고갯짓으로 탕을 달리해 들어갔다. 


욕탕에 들어가기 전 사물함, 캐비닛, 뭐라고 불러야 하나 하여간 옷장이 많은 곳에서 짐을 정리하는데 그 옷장 마다 위에 빼곡하게 샤워용품 바구니가 채워져 있었다. 맡겨두고 오는 모양이었다. 이상한 풍경이다, 생각하고 탕에 들어가니, 이렇게 좁은 곳은 또 처음이었다. 나는 한 오분을 그냥 서 있어야했다. 씻을 곳이 없었다!! 죄다 자리가 맡아져 있었고, 내가 쓸 수 있는 샤워기는 없었다. 가만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땀이 났다 정말로. 이 사람들은 모두 평일 저녁에 이곳에서 씻는 것인가. 겨우 한 자리 나서 씻을 수 있었다. 정말로 고됐다. 


찜질방에 올라가니 석이는 벌써 자고 있었다. 역시 별 말 없이, 내일 계획 그런것도 없이 아침에 일어날 시간만 정해놓고 잠을 잤다. 수면실에서 잤는데 찜질방에서 이렇게 푹 잘수 있다니? 그러나 8시부터 잤던 석이는 중간에 깨서 잘 못잤다고 했다. 속상한...우리는 어제 석이가 가자고 했던 분식집에 가기로 했다. 24시간이었다. 여행 중 가장 맛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나주를 떠났다. 집에 가고 싶다는 고백을 수시로 하며 터미널로 가는 유혹을 참으며. 나는 엉덩이가 아파서 결국 옷을 칭칭 감고 탔다. 위안이 되었던 모양인지, 나아져서 겨우 앉게 되었다. 이제 아무것도 없다는 길을 가야하고, 마을을 떠나기 전에 먹을 것을 좀 사서 페달을 밟았다. 


나주에서 목포까지 길은 정말로 아무도 없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없었고, 마을도 자주 없어졌고, 끝없는 논만 계속 있었다. 간간히 논에 약주는 분들을 멀리서 볼 수 있었고 집이 보이지 않거나 너무 작았다. 무슨일이 생겨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할 그런 외딴곳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길을 달리는데 신기하게 신이났다. 정말로 여행을 온 것 같다고도 했다. 석이와 나는 긴장이 풀려서 자전거를 즐기며 달릴 수 있었다. 순조로왔고 이대로라면 점심때 도착할 수 있을 거였다. 도로를 나란히 달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대화의 내용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즐거운 목소리였다. 아마 이런 얘길 했던가. 내 친구들 중에 누나랑 자전거 여행 오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거야. 그리고 거의 비슷한 말이 이어졌다. 나도 그래. 동생이랑 자전거 여행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서로여서 여행을 만들 수 있었다. 석이는 내가 있어서 여행을 조심할 수 있었고 나는 석이가 있어서 더 열심히 달릴 수 있었다. 12%, 13%되는 경사를 만나서 같이 끌고 올라기고 하고, 서로 조심하라며 말을 나누고 그 경사를 내려가 타기도 했다.


 그 중에 걱정은 물이었다. 어디쯤이었나. 이곳을 벗어나면 더이상 마을이 없을 것 같았고 마침 고추를 널고 계신 분들이 있어서 물을 주십사 부탁드렸다. 흔쾌히 2L물, 차가운 물통을 주셨고, 우리는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그 분에게는 장성한 두 딸이 있었는데 일에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주말이라고 멀리 내려온 듯 했다. 부모님이 생각났다. 몇가지 말을 나눴고 목포까지 간다고 했고, 건강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다. 마음이 전해졌으면 한다. 우리는 물 걱정 없이 간간히 쉴 때마다 양껏 먹을 수 있었다. 차가운 물을 먹고 싶은 것 만큼 먹는 것. 배도 고프지 않았다. 걱정없이 달릴 수 있었다. 


석이는 동영상을 자주 찍었는데, 그 영상에는 주로 내가 나왔다. 달리는 모습이, 나의 한 때 여름이 석이의 눈 속에 있었다. 


얼마 안가 목포가 보이고, 목포라는 말에 설렜다. 우리가 처음에 가자고 했던 곳에 왔구나. 도착지는 수수했다. 우리에게 도착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출발지였고, 그래서 그곳은 화려하거나 특별하지 않았다. 어느 인증센터에서보다 오래 쉴 수 있었다. 과자를 한 봉지 다 까먹고, 삼각김밥도 먹고 무엇보다 물을 많이 먹었다. 물이 남아서 손을 씻을 수도 있었다. 밥알과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발 밑에 개미가 분주했고 제 몸 만한 밥알 끄는 것을 오래 지켜보았다. 그날 우리는 여름의 끝에 앉아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별로 기록할 것이 없다. 목포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다시 대전으로, 버스를 차근히 탔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자고 목포 터미널 근처에서 뭘 먹었으나 지나치게 맛이 없었다. 무화과를 파시는 할아버지를 뵈었고, 광주가는 버스에서였던가 우리는 첫 번째 자리에 앉았다. 빽미러에 우리가 보이길래 사진을 찍었다. 그게 뭐냐고, 잘 나오지도 않는 사진을 보면서 웃었다. 8월 15일부터16일. 비는 아직 오지 않았다. 비를 잔뜩 머금은 구름 밑에서 달렸다. 대전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세찬 비가 떨어졌다. 더위를 떨구려는 듯, 여름을 보내려는 듯 세차게, 또 세차게. 석이는 제 친구들과 다른 곳으로 자전거를 타러 갔고 내 우의를 더 챙겨 주지 못한게 맘에 걸렸다. 저녁, 비가 너무 많이와서 달리는 것을 그만 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이제 수시로 오던 비가 잦아들어가는 걸 본다. 여름의 가장자리가 보기좋게 말라가는 걸 안다. 비로소 여름을, 여행을 닫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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