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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댐을 가기 위해 본격적으로 자전거 도로를 탔다. 예보에는 비가 온다고 했지만 비 오기 전 날씨였다. 구름이 많아 해가 흐린 날씨는 기뻤지만 자전거 도로는 듣던 대로 말썽이었다. 누가 폐타이어를 활용한 놀이터 바닥을 자전거 도로로 깔자고 했는가. 한 번 페달을 굴리면 두 번은 꿀렁거리는 도로였다. 게다가 전날 내린 비를 흠뻑 머금어서 물먹은 엠보싱 휴지 위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설마 안전을 위해 이런 도로를 깔아놓았다는 답변은 없길 바라면서, 그렇다면 안전을 위해 전국의 도로야 말로 적극 도입해야 한다면서 푸념이 손을 떠난 두루 말이 휴지처럼 풀려나왔다. 너무한가, 그래도 싸다. (담양댐 근처 일부 구간만 그렇다)

 

그렇게 담양댐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이름은 담양댐인데 댐을 보지 못한게 함정. 자전거가 많이 세워져 있었다. 장비를 갖추고 달리는 분들은 대개 50대 이상인 분들로 삼삼오오 모여 계셨고 누군가는 도장을 찍고 안주를 드시고 수다, 폭소를 이어가셨다. 인증센터라는 거대한 말과 달리 인증을 치루는 곳은 소박하다. 빨간 전화부스 같은 곳에 들어가서 도장을 찍고 나오면 끝. 그러나 그 모습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엄숙하며 거사를 치루는 느낌을 주었는데. 그것은 '포도알 스티커'를 연상하기도 했다. 스티커를 모아 포도를 완성했던 것을 단순히 어린 시절 동기를 끌어내는 교구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무엇을 모아서 완성 한다'는 속성이 그때부터 이어져 왔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길에 도장 여러 개를 모으는 것으로 사람들을(게다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불러 모으지 않았나. 물론 명확하게 착한 일(이라고 규정된)을 한 대가로 받는 건 아니었지만 기념할 만한 일을 했으니, 라는 인정이 있었음은 모른척 할 수 없다. 앞으로 6개의 도장을 더 받아야 한다며 수첩을 펴보이는데, 하나를 채우니 비어있는 여섯 개가 도드라져 보였다. 엉성한 지도를 읽으며 출발할 준비를 했다.

 

그러자 몇 분의 어르신이 우리 주위로 모이셨다. 지도를 살피시며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그런 것을 물으시고 앞으로 가는 길의 특징을 말씀해 주셨다. 하루로는 무리일낀데, 예 하루 자려고요. 이 자전거로는 1.5배 더해야 한다. 작은 바퀴가 더 작아보였다. 길 구간을 짚으며 말씀하셨다. 죽산보부터 하구둑까지는 마을이 없어, 가게도 없어서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승촌보 지나서 하루 자고, 거기가 나주쯤 될거여. 거서 하루 자고 먹을 것을 잔뜩 사가지고 가, 영산포가면 가게 많거든. 그때 물이니 까자니 밥이니 다 사서 이동해야 뎌. 그러니까 이 길의 특징은 아무것도 읎다. . 마지막 말씀은 아직 오지 않은 다음날을 벌써부터 걱정하게 만들었다. 생생한 말씀에 과연 감사하다는 말씀을 남기고 담양댐을 떠났다. 좋은 정보를 많이 받았는데, 기분이 좋지 않다.

 

오늘 담양에서 나주까지, 이제 시작이니까 50km는 달려야 하고 우리는 다소 굳은 얼굴로 페달을 굴러 다시 꿀렁꿀렁한 길을 지났다. 오늘은 어찌 간대도 내일은 어쩐다. 아무것도 없는 길이란 대체 뭘까. 상상도 되지 않아서 조금씩 정보를 더해 생각해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길에 자전거를 타는 느낌을...그러다가 담양 죽녹원 근처에 다시 도착해 죽통밥 같은 것이 유혹했지만 점심 먹기에 이른 시간이어서 메타세콰이어 길을 지나 대나무숲 인증센터도 지나 내친김에 광주에 닿기로 했다. 조금 늦더라도 그곳에서 점심을 먹어야 세시까지 쉴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광주의 시가지는 보이지 않았다. 단조롭고, 지치고, 볕이 많고, 배고프고, 목마른 시간이었다. 게다가 일키로 마다 써있는 표지판은 남은 키로수를 이삼 키로씩 유동적으로 바꾸며 보여주었는데. 달려왔는데 달리기 전보다 가야 할 길이 더 늘어난다. 그러다가 간신히 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히 상가가 있을 것이다! 배고프니 일단 들어가자 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매의 눈을 가진 동생은 아파트에 실외기가 하나도 없다며 마을에 사람 없을 가능성을 높이 들어 보였다. 그러나 어쨌거나 아파트가 여러 벌 서 있는게 아닌가. 그곳에 사는 사람이 없더라도 만든 사람은 있지 않겠나. 벌써 한 시 가까워지는 시간. 도로와 아파트 단지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 자전거를 끌었다. 아파트 단지에 사람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신 주변에 공장이 있었고, 식당들이 제법 크게 무리지어 있었다. 광주의 외곽이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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