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mf
김경주
당신과 내가 한 번은 같은 곳에 누웠다고 하자 당신의
혀를 만지며 눈을 뜨고 주머니 속에서 나의 아름다운 유
리알들을 꺼내 보여주었을 텐데 긴 사슬을 물에 풀고 떠
나는 해질녘의 외항선처럼 내항의 흐름을 잃어버리는 시
간, 내가 들어가서 객사한 창(窓), 남몰래 당신의 두 눈을
돌려주어야 할 텐데
이 내막으로 나는 제법 어두운 모래알들을 가지고 노는
소년이 될 줄 알았다
그 적막한 야만이 당신이었다고 하자 생의 각질들을 조
금씩 벗겨내는 언어라는 것이 먼저 인간을 기웃거리는 허
공을 보아버렸음을 인정하자
새들이 간직한 미로를 가지고 싶었으나 그들이 유기해
버린 바람의 지도는 밤에 조용히 부서진다 한 인간을 향한
시간의 내피가 인연이 된다면 한 마음을 향한 나의 인간은
울음인가 그 내피들이 다 대답이 되었다고는 말하지 말자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배가 도착했다고 하자 언어란
시간이 몸에 오는 인간의 물리(物理)에 다름 아니어서 당
신과 내가 한 번은 같은 곳에 누웠다가, 울고 갔다고 적어
두자
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하우스, 2006.
언어란 시간이 몸에 오는 인간의 물리(物理)에 다름 아니어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련-성윤석 (0) | 2014.10.06 |
---|---|
손바닥을 내보였으나-성윤석 (0) | 2014.10.05 |
고요한 저녁의 시-진은영 (0) | 2014.09.14 |
안개 속의 거짓말-김선재 (0) | 2014.09.12 |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유홍준 (0) | 2014.08.31 |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Total
- Today
- Yesterday
TAG
- 이영주
- 이준규
- 이병률
- 피터 판과 친구들
- 민구
- 일상
- 정읍
- 희지의 세계
- 대만
- 배구
- 1월의 산책
- 궁리
- 네모
- 한강
- 서해문집
-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
- 김소연
- 지킬앤하이드
- 현대문학
- 차가운 사탕들
-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 후마니타스
- 책리뷰
- 뮤지컬
- 진은영
- 문태준
- 상견니
- 이장욱
- 열린책들
- 이문재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