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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김경주

_봄밤 2014. 9. 20. 22:26


러나 어느 날 우연히

-mf




김경





 당신과 내가 한 번은 같은 곳에 누웠다고 하자 당신의

혀를 만지며 눈을 뜨고 주머니 속에서 나의 아름다운 유

리알들을 꺼내 보여주었을 텐데 긴 사슬을 물에 풀고 떠

나는 해질녘의 외항선처럼 내항의 흐름을 잃어버리는 시

간, 내가 들어가서 객사한 창(窓), 남몰래 당신의 두 눈을

돌려주어야 할 텐데


 이 내막으로 나는 제법 어두운 모래알들을 가지고 노는

소년이 될 줄 알았다

 그 적막한 야만이 당신이었다고 하자 생의 각질들을 조

금씩 벗겨내는 언어라는 것이 먼저 인간을 기웃거리는 허

공을 보아버렸음을 인정하자


 새들이 간직한 미로를 가지고 싶었으나 그들이 유기해

버린 바람의 지도는 밤에 조용히 부서진다 한 인간을 향한

시간의 내피가 인연이 된다면 한 마음을 향한 나의 인간은

울음인가 그 내피들이 다 대답이 되었다고는 말하지 말자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배가 도착했다고 하자 언어란

시간이 몸에 오는 인간의 물리(物理)에 다름 아니어서 당

신과 내가 한 번은 같은 곳에 누웠다가, 울고 갔다고 적어

두자




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하우스, 2006.







언어란 시간이 몸에 오는 인간의 물리(物理)에 다름 아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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