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고요한 저녁의 시
진은영
자 그러니 말해봐 너에게 저녁은 어떻게 오지
길가, 활짝 핀 빨간 꽃들이 자동차 엔진처럼 붕붕거리고
여자애들의 하얀 스커트가 휘날릴 때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눈부신 바람이 소란스럽다
너는 눈이 아프다
꽃들도 빨리 시들고
구름 뒤로 숨는 달과 별처럼
나무들도 어둠의 커튼으로 제 몸을 가려야 한다
오늘 밤은 푹 자야 한다
집들도 창문도 열리지 않고
돌아오다 문 앞에 선 너도
네 집의 문을 두드리지 말고
그 앞에 누워라
달려도 덮고
시계도 맞추지 말고.
끝없이 되풀이될 소란함과 분쟁을 만드시느라
일찍 잠자리에 든
신의 곤한 호흡 속에서 이 거대한 정적
창세기의 첫 일요일 저녁처럼
침묵에서 나온 것들은 모두 침묵으로 돌아간다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지성사, 2003.
자 그러니 말해봐 너에게 저녁은 어떻게 오지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바닥을 내보였으나-성윤석 (0) | 2014.10.05 |
---|---|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김경주 (0) | 2014.09.20 |
안개 속의 거짓말-김선재 (0) | 2014.09.12 |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유홍준 (0) | 2014.08.31 |
들깻잎을 묶으며-유홍준 (0) | 2014.08.31 |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Total
- Today
- Yesterday
TAG
- 김소연
-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
- 한강
- 궁리
- 배구
- 이영주
- 피터 판과 친구들
- 희지의 세계
- 서해문집
- 차가운 사탕들
- 진은영
- 정읍
- 뮤지컬
- 열린책들
- 민구
- 네모
- 후마니타스
- 이준규
- 지킬앤하이드
- 1월의 산책
- 이문재
- 이병률
- 대만
- 현대문학
- 이장욱
- 문태준
- 상견니
- 일상
- 책리뷰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