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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을 내보였으나
성윤석
새로 이사할 때마다 밑이 꺼지고 천장이 뚫렸으니,
언제나 집 걱정은 안 하지 않았나. 짐도 작아져
어느 해엔 큰 가방 하나 들고 이사 가지 않았나.
사람이 가버린 어느 해의 눈물도 어느새 많이 갖
다 버렸으니,
적어도 남들보다는 봄꽃들과 가을 바다 저녁노을
강가의 안개 같은 것들을 더 많이, 더 오래 갖고
놀지
않았나.
바닥이란 딛고 일어서는 곳만은 아니질 않나. 바
닥의
바닥 손바닥을 내보였으나,
어느 여름밤엔 담 넘어 집에 가는 그녀의 희디흰
운동화를
받쳐주기도 하였다네.
성윤석, 『멍게』,문학과지성사, 2014.
아주 좋지는 않지만 아주, 좋지요?
첫 번째로 실려 있는 시로,
넘길수록 더 좋습니다.
헤헤. 요런거
게
게 한 마리
어쩌다가 공판장 나무 상자 톱밥 속에 묻혀 있다.
갑갑해서 기어 나온 게 한 마리
어쩌다가 새벽 시장 중앙대로 한복판에 섰다.
양쪽 집게발을 높이 치켜들고
집게발을 양옆으로 넓게 벌리고
게 한 마리가 어떻게 세계를 압도할 수 있는가를
게거품을 물고 몸소 묻고 계신다.
눈알까지 부라리며, 최대한 벌리고 벌려
이만한 세상, 아아 요만한 세상 하면서
바닷사람, 뱃놈, 물 결. 출렁이는 얼굴. 한동안 이 책으로 나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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