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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깻잎을 묶으며
유홍준
추석날 오후, 어머니의 밭에서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깻잎을 딴다
이것이 돈이라면 좋겠제 아우야
다발 또 다발 시퍼런 깻잎 묶으며 쓴웃음 날려보낸다
오늘은 철없는 어린것들이 밭고랑을 뛰어다니며
들깨 가지를 분질러도 야단치지 않으리라
가난에 찌들어 한숨깨나 짓던 아내도
바구니 가득 차오르는 깻이파리처럼 부풀고
맞다 맞어, 무슨 할말 그리 많은지
소쿠리처럼 찌그러진 입술로
아랫고랑 동서를 향해 연거푸 함박웃음을 날린다
어렵다 어려워 말 안해도 빤한 너희네 생활,
저금통 같은 항아리에 이 깻잎을 담가
겨울이 오면 아우야
흰 쌀밥 위에 시퍼런 지폐를 척척 얹어 먹자 우리
들깨냄새 짙은 어머니의 밭 위로 흰 구름 몇덩이 지나가
는 추석날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푸른 지폐를 따고 돈다발을
묶어보는
아아, 모처럼의 기쁨!
유홍준, 『저녁의 슬하』, 창비, 2011.
이것이 돈이라면 좋겠제 아우야
누구 목소리 들킨것처럼 웃음이 걸려서 냉큼 사왔제. 추석이구나, 하고 말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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