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기

어리석은 노래

_봄밤 2014. 8. 5. 22:45


당신에게 이 시들을 바친다고 나는 쓴다.

롤랑 바르트는 아무것도 줄 수 없기에 헌사를 바친다고 말했
었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서 당신에게 주는 것은 (내 목소리
에 의해) 나의 육체인 동시에 당신이 그 육체로 만드는 침

묵…" 그리하여 그것은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내미는 실오

라기만큼이나 아무 쓸모없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사랑하는 이여, 줄 것이 없다. 당신을 위해 부른다고

깊이도 믿었던 이 어리석은 노래들밖에는.



진은영, 『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지성사, 2008. 8. 22




두 개의 구슬이 멈추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다른 구슬의 멈춰있는, 혹은 금방이라도 구덩이로 빠질 것 같은 경로를 바꾸기 위해 어디선가 달려온 다른 구슬이 있었다. 그 구슬은 부딪히면서 바뀔 자신의 경로를 알지 못한채 다가왔다. 멈춰있는, 혹은 금방이라도 구덩이로 빠질 것 같았던 구슬은 보기좋게 다른 구슬과 부딪혔다. 구슬과 구슬이 부딪히고 다른 곳으로 가기까지는 만 한 달이 필요했다.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서 오랜 힘을 다해 부딪히고 부딪혔으므로, 서로는 가능한 각도를 다해 틀어졌다. 한 달이 지나고, 두 개의 구슬은 서로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흘렀다.


오비와 하이트, 하이트와 오비를 바꿔가며 먹은 지 한 달이 되던 날 좋은 것좀 마시지. 하며 건네온 이 있었는데 그 술은 매우 유복했고, 한 잔이 매우 작았고, 그리고 이름을 모른다. 


일을 마치고 들어오신 어머니께서 양말 좀 벗겨봐라, 라고 말씀하시면 예. 하고 가서 양말을 두 손으로 벗겨드렸다. 바깥쪽과 안쪽이 바뀌지 않게 온전한 모양으로 나온 양말은 실밥을 내보이는 양말보다 슬퍼보였다. 먼지가 풀풀 올라와서 어머니 모르게 숨을 오초간 멈췄다. 합치면 십초정도 되었겠다. 어머니 모르게. 


일분 삼십초를 넘기기 어려운 딸과의 통화를 떠올리면 그날의 통화는 이상한 데가 있었다. 사십 오분동안 아버지는 거의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다. 응응. 그려. 응응. 에 짧은 한 마디가 추가되어서. 아버지의 귀가 그날만큼 길었던 적이 있던가. 예전에 내 오랜 통화를 보고 아버지가 하셨던 볼멘소리가 나오려고 했다.


자판이 고장나서 이응이 무너졌던 날 거의 모든 글자를 만들지 못했다. 눈이 자꾸 감겼다.


어디서 보았는데, 둘을 몰랐는데,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참 좋아서 기억에 남았다. 아낌없이 서로에게 들어오는 빛을 달게도 받고 있었는데.


어떤 무덤에서 신발 일곱켤레를 발견했다. 신발의 생김에 팔려서 층위를 읽지 못했다. 뒤늦게 생각했고 되돌릴 수 없어서 한참 자책했다. 일곱켤레의 신발, 남녀의 것이 섞여 있었다. 누구의 것이었을까.


내게 영정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셨던 어르신은 그 웃음 그대로 계신가. 그 마을의 바람과 모과차와 겨울과, 찬이슬을 맡고 하루 이틀 밖에 있던 검정 후드 짚업은. 




다시 생각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좀 웃는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이접기를 하는 마음  (0) 2014.08.25
광장이 할 수 있는 어떤 것  (0) 2014.08.25
금요일 같은 날  (0) 2014.07.16
클렌징 크림  (0) 2014.07.07
일기  (0) 2014.07.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