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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깔린 아스팔트 까만 냄새를 지나 풍성하게 꽃잎 떨어지는 나무 밑을 걷고 있었습니다. 중간 중간에 청단풍과 홍단풍이 같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어요.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멀리 있는 그가 생각났구요, 나는 그가 적어준 이름 위로 좋아하는 작가의 봄을 받아서 오는 길이었습니다. 오후는 내내 말이 없었습니다. 유난히 부는 바람에 계절을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같은 날이었습니다. 그때 양말 한짝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어요. 양말은 베이지색 바탕에 녹색 물방울 무늬가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아주 작아서 내 검지손가락 만한 길이었어요. 그런데 이 양말의 입구에는 동전지갑을 만들 때 쓰는 은색 조리개를 박아 놓은 게 아니겠어요. 그것을 빼곰하게 열면 양말의 내부가 그만큼 보였습니다. 양말은 부드럽고, 양말은 작아서 바깥을 잡으면 안쪽이 함께 잡혔습니다. 그렇게 안쪽은 바깥에서도 충분히 감지 할 수 있었지요. 오히려 이만큼 열어 마주하자 혼란스러웠습니다. 실밥과 물방울 무늬의 반대편이 어지러웠어요. 다시 양말의 바깥으로 돌아와 지저분하게 낙엽과 흙과 먼지가 붙어 있는 것을 하나씩 떼면서 걸었습니다. 일찍 헤어진 지금은 다 떨어지고 없는 벚꽃을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것을 보러 왔던 어떤 가족의 것이었겠지요. 잠시 후 나는 지난 봄에 아주 작은 마스크를 주운 것을 기억했습니다. 아시겠지만 그 작은 마스크를 쓰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꽃 그늘은 많았고, 그 아래 있는 가족-아이가 있는-은 더 많았습니다. 아마도 새 것인 것 같은 작은 마스크를 주워서 더러워지지 않도록 옆에 두었습니다. 책을 놓았다가 다시 들곤 했습니다. 어떤 입을 가리고 있었을까요. 어떤 입술과 헤어졌던 걸까요. 나는 어떤 웃음과 목소리와 침과 그런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다가 오랜만에 마스크의 안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어제 놓았다는 듯이 몇 번째 칸 위에 있는지 바로 기억할 수 있는게 아니겠어요. 마스크 옆에 양말 지갑을 놓으면 조금 이상하겠다고 여기면서도 나는 이것의 자리를 그 옆으로 점찍어 놓고 있었습니다. 손가락만한 양말을 두 손으로 빠는 상상을 하면서 다시 걸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것을 빨아 본 적이 없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엄지와 검지만으로 붙잡고 비벼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작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흙물이 빠지면 어떤 색을 찾게 될까요. 오는 길에 다시 그 자리에 놓을까 몇 번이고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을 바닥에 놓고 지나갈 수 있는 나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곳을 다시 지났습니다. 양말에 꼭 끼었을 순한 살 냄새도 지나갔습니다. 이제 더 큰 것이 편하게 감쌀 발을 생각했어요. 통통하게 살이 올라서 어제의 입구를 봉해도 좋을 시간을 꼭 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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