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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어서 좋은 것

_봄밤 2024. 11. 4. 09:14

오랜만에 집에 갔다. 갈 곳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집에도 가고 싶었지만 고속버스를 타고 싶었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을 가는 버스는 즐거운 데가 있다. 너무 오래 타는 것은 아니고, 잠이 잘오고, 무엇보다 남에게 내 여정을 맡기고 마음껏 게을러도 된다는 게 좋다. 그 시간만은 달콤하게 자는 일이 얼마나 좋은지. 버스 안에서 풍경을 보는 일도 좋다. 충분히 잘 보이지만 가깝지 않은 풍경들. 보고는 있지만 내가 영향을 받거나 관여하지 않는 계절들. 머무르지 않고 비껴 나가는 순간을 좋아한다. 놓친 것은 버스 탓으로 돌리면 된다. 버스가 너무 빨라서 알 수 없었어. 하지만 알 수 없어서 좋은 게 있다.  

 

아직 조금도 춥지 않아서 가을이 한가득이었다. 풍경을 보다가 졸다가 버스에서 내렸다. 오랫동안 이런 걸 하고 싶었다. 어딘가를 도착하기까지의 도중을 즐기는 거. 여행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래도 여행 비슷한 느낌을 주는 거. 걷기나 긴 여행이 줄 수 없는 미덕이다. 아주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자연이 가까워서 주는 위로가 있다. 사람이 많지 않다. 눈에 걸리는 건물이 없다. 하늘이 얼마나 높고 넓은지 알 수 있다. 느긋한 일은 아니지만 맞춰나가야 할 것이 계절의 속도라는 점에서 부모님의 일의 즐거움과 고됨이 있다... 마늘을 좀 찧다가, 드라마를 보다가, 밥을 먹고, 과일을 먹고... 그렇게 먹고 자다 왔다. 별 대화를 크게 나누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역시 좋다. 그렇게 한잠을 자고 왔다. 그동안 나는 왜 그렇게 부지런을 떨며 뭘 그렇게 바꾸려고 했을까? 집의 전선이 어지러워 정리했던 게 생각났다. 엄마가 다시 원래대로 연결하느라 고생하셨다. 물론 역정도 내셨다. 삶을 이해하지 않는 실용이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나는 이제 콘센트에 조금도 손대지 않고 보지도 않는다. 방을 민다. 집이 좀 어둡다는 생각을 했지만 밝아서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이 많을 필요도, 밝을 필요도 없다. 충분히 어두운 것이 중요하다. 이곳은 일찍 밝아지니까. 

 

다시 집에 가는 길, 작은 정류장에서 여러 사람을 봤다. 그 중에 어떤 이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부자지간임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닮아있었다. 아버지를 배웅하러 나온 것 같았다. 인천으로 가는 버스를 보더니, 저걸 타시면 된다고 하고는 전화통화를 하며 정류장 저쪽으로 멀어졌다. 그게 인사였다. 가까이서 보니 그 버스는 인천이 아니라 인천 공항에 가는 버스였다. 인천 안가요, 하는 기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할아버지는 버스 계단을 내려올 수 있었다. 인천공항행 버스가 떠나고 할아버지는 아들을 찾으러 뒤를 둘아보았지만, 뒷모습이었고 여전히 통화중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들을 부르지는 않았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보였고, 달리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몰라 보였다. 어느 새 자기를 본 사람이 좀 있었기 때문인가도 싶었다. 처지가 너무 쉽게 들켰다. 잠시 후 인천행 버스가 도착했고, 나도 모르게 저것을 타시면 된다고, 안내했으나 그러지 않았어도 할아버지도 그것이 인천행 버스임을 바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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