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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 하나였고, 버스 티켓을 손에 들고 흰색이 섞인 갈색 머리가 단정했다. 앞에 다른 버스가 밀려서 서울행 버스는 원래 정차하던 곳보다 좀 뒤에 서 있었는데, 그는 깡뚱한 짐을 들고 일찌감치 버스에 첫 번째로 줄을 만들었다. 여러모로 준비된 사람이었다. 가장 먼저 버스에 탔던 것이다. 나는 정류장에서 좀 더 기다릴까 하다가, 사람들이 그리 움직이기 시작해서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그가 버스에 올라 티켓을 스캔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검표가 되지 않았다. 티켓을 다시 확인하세요 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왔다. 버스 기사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 티켓을 다시 확인하라잖아요. 확인해 보세요. 안내 메시지를 그대로 읊었다.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그는 버스 기사 옆으로 좀 비켜섰다. 갈색에 흰색 머리가 다소 섞인 그는 티켓을 다시 보아도 뭐가 잘못된지 알 수 없었고, 나는 기계 오류이겠거니 하고 버스에 탔다. 내 자리는 꽤 뒷자리였다. 다시 한 번 티켓을 스캔했는는데 역시 같은 메세지가 흘러나왔다. 여기 0자리는 있어요, 표가 겹치잖아. 기사는 반말을 섞었다. 티켓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확인하지 않으면서 잘못된 표를 가져왔다고 다그치고 있었다. 그 후로 몇 사람이 더 탔는데도 제일 먼저 온 그의 티켓 검표는 아직도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거의 다 탔고 마침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그의 표를 봐주었다. 

 

아, 날짜가 내일이네요. 00월 0일 표에요.

 

하지만 그 뿐이었다. 표를 봐준 사람은 더 묻지 않았다. 왜 다음날 표인지, 오늘 서울에 가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 본인도 말하지 않았다. 내일 출발하는 표를 가져온 그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거나, 표를 바꿔오겠다거나, 하다못해 아뿔사, 라거나 등의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버스에서 내렸다. 말할 힘을 잃어버린 듯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다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는 어떤 종류의 실망이 그를 지나쳐갔는데, 그게 이 버스의 모두를 향한 것처럼 보였다... 창밖으로 그가 티켓과 버스를 번갈아 보는 모습이, 오래 계속되었다.

 

내겐 '날짜가 내일이네요. 이건 내일 표에요.' 라는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무언가 깨닳음을 줄 것 같았던 모양새였던 것 같다. 내일 가는 표가 있어도 오늘은 탈 수 없구나 식의 생각을 하며, 내 인생의 여러 군데에 대입해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진짜 잘못을 찾아보려고 했다. 정류장에서 표를 잘못 발권해 준 것일까? 그가 오늘 잘못 나온 것일까? 그는 한 시간을 기다려 다음 차를 타게 될까? 내일 출발하는 버스를 타게 되는 걸까. 그 사이 그가 이 버스를 타기로 준비된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는 이 버스에 가장 먼저 앉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잠시만요, 하지 않았을까.

 

표를 다시 사오는 데는 오분이면 되었을 것이다. 이 차는 만차가 아니었다. 그는 버스를 놓쳤지만 사실 버스의 대부분이 그를 버린 것과 다름 없는 일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버스에서 내린 그가 아니라 그 버스에 실려 오늘 자신의 출발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진짜 잘못은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는 것, 그 가운데 내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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