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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다녀온 이야기

_봄밤 2024. 10. 3. 13:51

 

 

 

 

산에 다녀왔다. 그곳을 아는 이라면 그건 산도 아니지, 라고 말할 수 있는 곳에. 산이라고 하기는 좀 그러니까 동네라는 말을 붙여본다. 동네산. 그러나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의 동네산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간단히 그저 산이라고 하자. 그래야 다녀온 보람이 배가 되니까. 산에 다녀오셨군요? 그런 반응을 기대하고 싶다. 이름을 궁금해 할 것이고, 무엇이 보이는지 궁금해 할 것이고, 듣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산을 생각할 것이다. 그 사이 이 산의 정체가 드러난다. 여긴 높지 않지만 그곳에 올라가면 주변의 다른 산이 잘 보여서 여기도 산이라는 '느낌'을 준다. 올라가는데 고만한 힘이 들고 내려오는 기분도 제법 좋다.

 

산에 가면 여러 사람이 있다. 혼자 온 사람들, 둘이 온 사람들, 여럿이 온 사람들. 외국 드라마에서라면 혼자 온 사람들끼리도 오늘 날씨 좋네요 하면서 이런 저런 안부를 묻거나 사건에 대해서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엊그제 본 드라마는 그렇던데. 70대 할머니가 30대 여자에게 말을 걸고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를 하더니 두 번째 만남에서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르는 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일어나지 않길래 거기서 가장 흥미로웠던 온통 흰색인 개, 속눈썹도 희고 긴 개를 보다가 왔다. 개는 순하게 있었다. 여기저기 들려 사진을 찍는 주인을 잠자코 잘 따라다녔다. 말을 붙이지도 않고, 짖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그늘 한 켠에는 작은 돗자리를 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제서야 나도 돗자리를 가지고 올걸 싶었다. 바닥에 앉자니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 옆에서는 그게 잘 안되었다. 난간에 기대서 건너편의 진짜 산을 바라봤다. 여기서 스니커즈 작은 걸 먹는 게 작은 기쁨이다. 지금까지 두 번 밖에 안해봤지만. 첫 번째 먹었던 스니커즈가 너무 맛있어서 대량으로 살까 하다가 말았다. 두 조각씩 산에 가서 먹어야 그 맛이 나는 걸테니까. 그건 같은 스니커즈라고 할 수없다.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은 그 흰 개의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개는 웬 고생이람. 개는 고생을 말하지 않으니까 무척 고생중일 수도 있다. 그 개의 고생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는 충분히 들려서 나도 모르게 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았다. 자리를 뜬 후라 개에게는 아마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 스니커즈도 다 먹었고, 개가 말하지 않는 고생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기 전에 자리를 떴다. 

 

누구나 사진을 찍는 공터를 지날 때,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말이 끝나기 전에 내 손에 핸드폰을 들려주어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곳은 완벽한 역광이었다. 실루엣만 보이고 표정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여럿이서 포즈를 고민하길래 찍어요- 하고 두 장 찍었다. 그들은 그 사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 같다. 찍어주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찍는 사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쁜 사람들을 더 기쁘게 만드는 사람이 못되었어. 온통 계단으로 된 내려가는 길에 서서 덕을 쌓아야 하는데. 뒷늦게 생각했다. 너르게 난 길로 다시 가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다시 공터를 지나야했기 때문에 그냥 내려갔다. 너무 빨리 내려왔다. 남의 동네산에가서 다른 산을 바라보며 스니커즈를 먹는 일과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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