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얼마 전 일기에 발끝으로 수영장 턱을 미는 일에 대해서 드디어 알게 되었다고 썼다. 이런 날이 오다니. 간절하게 바라거나 그것을 위한 연습을 따로 한 것은 아니다. 하다보니 되었다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질투나는 대답을 해본다. 6년 수영했으면 그럴만도 하다... 시간이 굉장히 걸리기는 했지만 발가락으로 턱을 쥐고 있다가 힘껏 밀어서 앞으로 쏟아지는 자세를 나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어떻게 절벽을 밀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지? 이제는 자연스럽게 벽을 밀며 목표했던 곳으로 떨어진다. 어떻게 갑자기 할 수 있게 된 걸까? 물론 갑자기라고 하기에 6년은 어울리는 시간은 아니다. 그동안은 그저 잘 지지하고 있다가 안전하게 뛰어내리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이제는 아니다. 확실하게 민다는 느낌, 벽을 밀고 앞으로 나가는 추진력을 얻는다는 느낌, 단단하게 발가락을 걸고 있다가 지지받기를 그만두고 떠난다는 느낌.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이제 안전하게 스타트하는 방법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건 좀 시시하고, 힘이 충분하지 않고, 무엇보다 나의 현재와 과거를 충분히 믿는 자세가 아니다. 내가 반동을 노릴 수영장 벽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건 내가 힘을 준 만큼 나를 밀어준다. 

 

이제 집중해야 할 것은 언제나 엉덩이를 높게 유지하는 방법이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엉덩이에는 눈이 없으므로 이 감을 익혀야 한다. 엉덩이는 언제 제일 높지? 발끝과 이마가 마주할 때. 머리가 앞이 아니라 발 너머 뒤를 볼 수 있을 때. 스타트 할 때 언제나 내가 떨어질 곳만을, 앞만을 보지는 않는다. 그건 한 번 보면 충분하다. 이제 위로 떠오를 발끝과 수영장 벽면을 보고 뛰어야 한다. 내가 나아가야 할 앞쪽이 아니라 내가 떠나가야 할 뒤쪽을 보고 뛰는 것. 이게 바로 출발의 자세이다. 

 

뒤를 충분히 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앞만 노려보는 것은 출발의 자세가 아니다. 그 전까지는 내 발끝을 보는 것. 나의 지지대. 내가 있던 곳. 수영장 레인은 이동하지 않지만,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떠나가야 할 장소가 새로워진다.

 

지금까지 돌았던 만 번의 트랙이 다시 여기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