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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삶이 명랑해지고 싶다면

_봄밤 2024. 8. 20. 14:27

아침에는 대체로 기분이 괜찮다. 가뿐하고,  아직 아무 생각도 들어오지 않았고, 고양이가 얼굴을 빼곰 열린 방문으로 내밀면서 안부를 대충 물어보고 간다. 딱히 궁금하지는 않지만 잘 있는지 살피는 고양이를 멀리서 귀여워 하며 일어나고 출근길이 고되긴 하지만 이를수록 바람이 시원하고 사람이 없어 나쁘지 않다 지하철 역 부근에서 쿠팡 출근버스가 기다리는데, 어떤 날은 줄이 길게 서 있고 어떤 날은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을 보며, 어느 날은 쿠팡 출근버스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이 서 있기도 한다. 그리고 그게 나인 것 같을 때가 종종이다.

 

삶이 명랑해지고싶으면 남에게 명랑을 주면 된다고 한다. 친절한 삶을 살고 싶다면 친절을 주면 된다고. 나는 먼저 명랑이나 친절을 주지 않는 사람이다. 인생을 그렇게 만들고 싶으면 먼저 주라는 것. 사람들이 반 정도는 이미 빠져나간 강의실에서 굉장히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이다. 먼저 나를 돌아볼 것,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반응을 나한테서 찾을 것. 정말 좋은 강의였다.  

 

환기를 하지 않고 어에컨을 튼 강의실에는 어쩐지 쾌쾌한 냄새가 가득했다. 창문을 열고 싶지만 에어컨을 킨 상태라 안 여는 것이 좋을 것 같고, 그런 공기에 익숙해지고 있는 사이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창문을 열었다. 쾌쾌한 공기가 조금은 빠져나가서 괜찮을 것 같은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무지막지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어쩌지? 열린 창문으로 비가 들어올텐데. 창문은 열었던 사람이 닫으면 될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창문에서 가까운 사람은 바로 나라서 나는 진작에 비가 오는 것도, 창문이 열린 것도 알고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닫아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가 의자를 들썩이며 일어나려고 한다. 며칠 전 다른 이와 대화하는 걸 좀 들었더니 동아리 회장이라고 한다. 솔선수범하려는 것일까? 보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일어나려는 것일테다. 비가 오는데 창문이 열려 있으니 닫아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귀찮아서 그걸 미루고, 움직일 여지도 뭉게고 있다가 나보다 안쪽에 있는 사람이 닫으면 좀 그런 사람이 될 체면을 걱정하고 있다. 빗줄기 거세지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창문을 열었던 이가 마침내 알아채고 쏜살같이 나와 창문을 닫는다. 다행이랄지. 뭐가 다행인지? 비가 들이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 나의 나서지 않음,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음, 미룸, 선행의 의지가 없음을 들키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다 들켰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알았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리고 내 옆에 앉은 동아리 회장이라는 사람이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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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독서모임이라는 걸 했다. 나는 정말로 독서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남의 얘기를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내가 얘기 하는 건 좋다) 독서모임을 해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는데 왜 하게 되었냐면 여성들이 모여 여성 작가의 책을 읽는다길래 슬그머니 참석한다고 손들어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 무려 6개월을 나가지 않았고, 이번에는 차마 미룰 수 없어 처음으로 나가보았다. 

 

세 명이 모였는데 이 작은 모임을 준비한 사람의 애씀이 보여서 저절로 잘 참여하게 되었다. 사회성을 모두 끌어내서 참여했다. 이번에는 나가지 않을 수 없어 카페도 내가 찾았는데, 이 카페에 뜻밖에 사람이 없어 모임의 이야기는 바로 주문 데스크와 동기화 되었고, 카페 주인은 어쩔 수 없이 청중처럼 듣게 되었다. 게다가 카페에는 모기가 서너마리가 있어 자꾸 허벅지 같은 곳을 뜯겼고 다른 사람은 팔뚝을 긁고 있었는데 하필 내가 카페를 섭외하는 바람에 불평을 가지지 못했다. 나보다 최소 10살에서 15살은 적어보이는 여자 둘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재미도 있었다. 누구보다 내가 가장 책을 잘 읽었으리라 생각했는데 두 명의 이야기를 더 들으니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들, 읽고도 그냥 넘어갔던 부분들이 채워지는 것 아닌가.

 

이래서 독서모임이라는 걸 하는 거구나. 스마트폰이 중학교때 나왔는지 고등학교때 나왔는지 이야기 하는 그들과, 스마트폰은 커녕 일반 폰도 대학에 가서야 보편화 되었던 나를 떠올리며 나이 차를 실감했지만, 나이 차를 느낀 대목은 거기서 뿐이었고 책 이야기를 하는 데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이 모임을 준비해온 분의 한 달 전, 이주 전, 약속 날짜를 맞추고 장소를 이야기하고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하고... 그 수고가 너무 고마워서 다음 달에도 나가야지 다짐했고 세상에 활동지(!)를 만들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해서 소중하게 간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임이 파하고 사진이라도 찍고 싶어하는 주최자, 내키지는 않지만 호응할 생각이었는데 독서모임은 재밌게 참여했지만 사진은 됐다며 명쾌하게 자르고 거대한 헤드폰을 쓰고 걸어갈 방향을 보는 다른 이를 보며, 아 MZ란 좋은 거구나 생각을 하고 헤어졌다. 집에 와서 보니 독서모임 단톡방에 "."으로 남았던 이의 프로필과 이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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