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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 <프라이스 킹!!!> 문학동네

제29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장점

잘 읽히는 것이 장점이다. 어쩌려고 이러는거지? 싶게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매끄럽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천명관의 <고래>가 생각났다. 여기서는 더 난잡하다. 하지만 그게 끌고 가는 건가. 규칙을 파괴한다. 혼란스러워 하지 않는 작가의 능청스러움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단점

"솔직히 말해 유머와 냉소를 과시하는 남성 성장 서사, 즉 남성 이야기꾼의 자족적 자아 찾기의 전통을 상기시키는 면이 있어 추천을 다소 망설이기도 했다." - 김건형(문학평론가)

 

적극 동의한다. 그리고 이것이 줄기라고 본다. 자본주의, 선거, 민주주의, 정치 등의 여러 요소를 끌여들었지만 결정적인 이야기는 20대로 추청되는 남성의 현실 적응 실패로 인한 자신의 파괴,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도 파괴하는 이야기이다. 물론 왜 그런 이들이 주인공이면 안되는 법이라도 있느냐? 라는 물음이 나올 수있다. 그것이 소설로서 유효한 이야기는 구가 되어서 굴러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과 현실과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일 때 가능하다.  

 

구천구가 제대로 된 관계를 맺는 사람은 박치국(남성) 뿐이다. 그에겐 제대로 된 관계를 알려준 이가 없으며(친구가 없고, 아버지가 없고)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부재와 혹독한 어머니와 자신을 핍박하는 형들만 구천구의 입장에서 그려진다. 그에게 환대하는 유일한 사람은 할머니인데, 구천구는 할머니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귀여워하는, 자신이 인사를 해야 하는, 동네 사람일 뿐이다. 

 

스포일러.

주인공 구천구는 구라는 다른 존재가 되어(말 그대로 구이다. 그것은 폭탄을 생각나게 한다. 검은 공) 자신을 괴롭힌 쌍둥이 형을 잡아먹고, 자신을 괴롭히는 엄마도 잡아먹는다. 구 안에 가둔다고 하지만, 그것이 잡아먹는다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구천구는 구천구가 있는 현실에서 그 무엇도 되지 못한다. 자신을 구출하지 못하며, 동네를 떠나지 못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가족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다른 세계를 떠나며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과 결별하며 성장이라는 외피를 얻는다. 구천구는 그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자신을 운용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그는 그 세계를 떠나지 못하는 대신, 다른 존재가 된 후 그들을 집어 삼킨다. 이런 이야기를 평론가들은 자본주의의 팽창의 비극적인 결말로 굉장히 '거대'하게 보고 있던데, 킹 프라이스 마트 등의 갖고 있는 무엇이든 판다는 것, 자본주의나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조롱와 말장난으로 분량을 차지하고 그럴 듯하게 눈을 돌린다. 킹 프라이스 마트라는 명명도... 자아의 비대함이 느껴지지 않는지. 인터넷 밈의 영향이 보이지 않을 수 없는 이름이다. '킹 받는다'

 

나는 이것이 자기혐오를 지속하며 분노하고 좌절하는 이들의 직유처럼 느껴졌다. 그가 '구'가 되어 버린 것이야말로 소설적인 귀여운 발상이다. 폭탄을 누가 귀엽다고 할까? 뻔뻔하게도 폭탄은 자신을 코끼리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그들은 세계를 구축하러 떠나지 않고, 그가 나고 자란 세계를 파괴하며, (좋게 말하면 쌍둥이 형과 엄마를 뱃속에 집어 넣고)전세계를 유랑하러 간다. 자신도 파괴되고, 자신의 주변인들도 파괴하는 결말에서 은은히 해탈이나 수도의 느낌을 넣는데에는... 이 비대한 자아에 대해 할말이 없다. 

 

여러 단어가 오염되고 남용되며, 소설의 맥락에서 소비재처럼 쓰인다. 예를 들면 백종원이 그렇고, 코끼리가 그렇다. 

 

 

- 어떤... 재능에 언어가 '소비'되었다는 인상이다. 이것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결과, 부산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재능이라는 말도 좀 과분한데, 다른 단어를 찾지 못해 그 정도로 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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