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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참여하지 않는 사랑

_봄밤 2022. 9. 16. 15:54

"그가 키제베터 논리학에서 배운 삼단 논법, 즉 〈카이사르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그러므로 카이사르도 죽는다〉는 카이사르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자신에게는 절대로 해당될 리 없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카이사르는 인간, 즉 일반적인 인간이니까 삼단 논법이 적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카이사르, 즉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었고, 항상 다른 모든 존재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엄마와 아빠, 미짜, 볼로자, 장난감들과 마부와 유모와 까쩬까와 함께한 바냐,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기쁨과 슬픔과 환희를 간직한 바로 그 바냐였다. 어떻게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줄무늬 가죽 공의 냄새를 카이사르가 맡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카이사르가 어머니의 손에 나처럼 그렇게 다정하게 입을 맞출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어머니의 비단 옷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카이사르의 귀에도 들린단 말인가? 카이사르도 고기만두 한 조각 때문에 법률 학교에서 소동을 피울 수 있어? 카이사르도 사랑에 빠질 수 있어? 카이사르도 재판을 진행할 수 있냐고?
그렇다, 카이사르는 분명히 필멸의 인간이니 그가 죽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나, 바냐,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가진 이반 일리치에게 그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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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있다. 검사로 그럴듯한 인생을 승승장구하던 이반 일리치가 이름 모를 병에 의해 붕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반 일리치의 중얼거림이 너무나 사실인 것 같아서 1886년 출간된 연도를 자꾸 떠들어 보게 된다. 죽음을 한번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죽음에 점점 가까워져가는 과정, 병으로 죽음에 질질 끌려가는 과정, 죽음에 고개를 떨궈가는 과정이고, 읽는 중이라 나도 그 과정에 걸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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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그만두고 싶어진다. 그만두고 길을 걸으면서 작은 것들을 생각하고 싶다.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여보고 싶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종종,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고 싶다. 원래 숨이 없는 것들은 가끔 쓰다듬어도 볼 것이다. 그것들이 눈치채지 않는 작은, 조심스러운 사랑으로. 그러니까, 참여하지 않는 사랑으로

 

나는 사랑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 -는 생각. 아니아니,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동참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당신은 어떻게 이해할까. 이런 말을 놓으면, 우리는 말이 없을 것이고 당신이 그 말을 이해를 해보려는 시간에도 당신이 참여할 수 없는 몸이 없어지고 있을텐데 내가 빠져나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어제는 당신을 바라보는 것이 어려웠다. 사랑하는 시선, 사랑해, 마지않아 하는 외치는 모든 얼굴과 표정과 온도를 보는 일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커피잔을 바라보았다. 아니아니, 내가 아니라 나의 피부가 그걸 견딜 수 없어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어떻게? 마음 그다지 깊지 않은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진심은, 나를 미워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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