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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몇 가지 되도 않는 말을 했는데 그 중 하나는 농구를 가르쳐 달라는 말이었다.

 

이야기를 나눈 곳이 농구장이 근처였고, 훌륭한 체육관과 많은 농구 골대가 있었다. 농구는 그가 거의 유일하게 하는 활동이었다. 혼자 할 수있지만 사람이 많아지면 원하지 않아도 팀을 짜서 운동하게 된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운동을 한다니 그게 운동의 언어인가 보지. 누가봐도 월등히 잘 할 것 같은 외관과 달리 나중에는 같은 팀에게 실망을 안겨준다고 했다. 

 

농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좀 같이 해보자고 말을 건네는 것은 그 밑에 깔린 저의를 봐 달라는 말이었다. 대학생도 아니고 서른이 지나서도 친교의 언어에는 전진이 없다. 아무리 잘 봐주어도 그건 거의 명백하게 같이 좀 시간을 보내요, 라고 말하는 언어였다. 진심으로 농구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면 나는 이미 농구를 한지 1년이 지나 농구공이 집에 굴러다니고 몇 가지 폼을 연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농구란, 서태웅이나 강백호, 슬램덩크 이상 어떤 이미지도 갖지 못했다. (실제로 농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잘 봐주어, 운동을 좋아해 농구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그래도 1정도는 진심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농구를 수단으로 당신을 더 알고 싶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는 있지만 농구를 '수단'으로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말하자면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농구를 하는 시간을 월등히 사랑했고, 자신만큼 할 수있거나 더 높은 기술과 열의를 가진 사람과 함께하는 운동으로서의 농구를 좋아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제안한, 그것도 삿된 마음이 농후하고, 불확실한 여정과 엉망진창의 결과가 분명히 예상되는 시간을 농구로서 보내는 것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라는 것은 나의 해석이고, 그는 간단하게 말했다. 농구를 가르쳐 줄 수는 있겠으나 농구를 얼마나 배울 수 있을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고, 농구를 습득한다는 것에는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때문에 농구를 배우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해주었다. 화가 났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대신 토스 연습은 해줄 수 있으니 배구를 하자고 했다. 그는 자신의 피지컬을 과신하는 사이 나이를 자주 잊는 것 같았다. 노인에 가까운 나이의 그는 중학생 때의 배구를 이야기 하며 그때의 잠깐 했던 경험만으로도 나 정도는 충분히 봐줄 수 있다고 했다. 화가 났지만 그가 토스의 어떤 속성을 말했을 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토스, 백토스의 경험. 아직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나의 오버 토스는 연습이 충분하지 않아서 언제나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농구를 좋아해서 일년에 한 두 번은 직관을 하러 간다고 했다. 나도 종종 그렇다. 어느 쪽에 앉냐는 말에 당연히 응원석 반대 편이라고 답하는 사람들. 시끄러운 것을 괴로워하기 때문에 비교적 조용한 곳에 앉지만 경기 이벤트 선물은 응원석에서만 진행된다. 그 선물과 이벤트와 응원을 부러워하면서도, 절대 그곳에는 앉지 않는 사람들. 조용하게 농구를 보거나 배구를 보는 사람의 뒷모습. 그곳의 계절은 겨울이다. 

 

농구의 시즌은 겨울이고, 배구 시즌 가을 부터 봄까지다. 모든 시즌이 끝나, 지금은 햇빛에 모든 것이 눈부신 오월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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