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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있으면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시간이 잘 갔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만남의 목적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나는 그와 도모하고 싶은 미래나 도달하고 싶은 관계가 없다. 그냥 지금이 재미있다! 목적이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미래를 생각하고 안부를 물은 것은 아니었다. 나의 소임은 아주 예전에 안부를 물었던 것으로 끝났다. 그저 오늘이면 오늘, 주말이면 주말, 그날을 잘 보내는 것이 이 만남, 혹은 모임의 목표였다. 앞으로 그 목표가 무엇으로 생길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그렇다.
혼자 배구를 하기 위해 좋은 벽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하면 그가 웃었다. 전혀 웃기지 않은 이야기가 여기서는 웃기는 일이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것으로 왜 즐거운가. 나는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면서 아까워하지 않고 초조하지 않은 것이 아주 오랜만이었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시간의 왕처럼 앉아서 누가 더 시간이 많은지 자랑했고, 기꺼이 자랑을 지켜보았으며 때로는 침묵으로 흘려보냈다. 지치거나 돌아갈 때가 되면 헤어졌다. 이야기의 밀도가 아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뭐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시간의 왕을 따라했지만 사실 빈한했던 나는 월의 첫 주가 지나자 금새 가난해졌다. 일 아니면 운동이었고, 가끔 보는 친구들과의 주말 일정이 있었고 그게 아니라면 혼자서 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6월은 이상하게도 마지막 주말까지 모든 약속이 잡혀 있었다. 심지어 10시에 치킨집 앞에서 만나는 약속도 잡았는데 그게 실제로 가능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안정된 생활. 예상 가능한 루틴. 이것을 유지할 수 있는 운동. 가끔의 이벤트. 이것이 지금 내가 만족하고 있는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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