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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생각보다 노인이 되지는 않았다. 얼핏 봐서는 수년 전의 어제와 비슷했다. 여전히 키가 컸고, 어깨가 넓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거나 찌지는 않았고, 어떤 뼈는 나의 살과 뼈보다 더 두꺼워 보였다. 그가 말하길 나는 좀 말랐다. 그때보다 3,4키로 정도 빠졌으며 운동을 한 이후로는 잘 찌지 않는다. 나는 40대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이전에도, 40대의 마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때 우리 중 실제로 40대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말이다.

 

1년 치의 말을 하루만에 했다고 했다. 자신도 왜 그러는지 알았을까? 오랜만에 만나서, 그 시간을 어색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일 수 있고, 혹은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을 수도 있다. 자신이 몇 년에 걸쳐 누군가에게 했던 조각들을 다 털어놓았다. 그게 5시간 쯤 되자 나는 피곤해서 몸을 똑바로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엎드려서 들었고 해가 지자 추워서 담요를 가져다 덮고 들었다. 6년 만에 만난 사람 앞에서 하품이 쏟아졌다. 그래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많다고 했다. 시간이 많은 만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많은 걸까? 나는 거의 졸면서 들었다.

 

예를 들면,

무슨 나무인지도 모르는 나무에 대해서, 그저 나무일 것으로 생각되는 나무에 대해서, 그 색을 예쁘다고 말하는 대화에서는 각기 받아들인 색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면서 예쁘다고 하면 예쁘네요 라고 말했던 맞장구에서 빠져나와, 그 나무의 구체적인 학명과, 학명이 유래된 이유와, 그 이름을 최초에 지었던 사람과, 그의 어머니와 그게 적힌 어떤 사전의 두께와, 그래서 그 나무가 주로 서식하는 땅 앞에 도착해서 나무의 잎맥을 들여다보고 타고 흐르는 수액의 기원과, 보이지 않는, 나무의 뿌리 근처에 사는 곰팡이들의 대대손손과, 수 십년간 그 나무마을 물어 뜯는 곤충의 평생과 그들의 지치지 않는 뿔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이 나무, 만지면 골이 제대로 패인 껍질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런 나무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는 것은 아니고 대화가 그런 식이었다는 것이다. 그게 인생에서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는 사람이 너무나 오랜만이라서. 어눌한 목소리는 끊길 듯 끊기지 않았다. 그 얘기는 내가 '그만 자러가야겠어요.' 라고 했을 때 드디어 끝이 났고 우리는 역 앞에서 헤어졌는데 그 인사가 너무나 짧아 지하철을 탔을 때, 저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정말로 만났던 것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행인 끼리도 나눌 수 있는 인사였다. 이 이야기의 밀도와 양에 비해 인사가 부족하다는 건 무슨 뜻일까? 어떤 예의와 형식을 갖춰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함께 있었던 시간을 의심하게 하는 인사는 수정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헤어질 때 인사를 좀더 멋지게 해봐요.

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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