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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person이라는 단어의 첫 번째 뜻이 ‘가면‘이라는 게 역사적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어빙 고프먼, <자아 연출의 사회학>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중에서

 

 

 

 

 

#총평: 오열

사회와 세대 속에 우연히 존재하게 된 나, 나를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관객으로 있을 수 있어서 기쁘고 극장을 나와서 실존적으로 고민할 수 있어서 고마운 이야기.

 

 

#세대와 사회에서 본질적으로 '나'로 사는 것이 가능한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극이었다. 사회에서 나를 연기한다는 것, 나라는 본질, 정치와 개인, 정치의 본질, 자본주의, 세대갈등, 여성, 장애, 이민자등 다루고 있는 면이 풍부해서 다면적으로 리뷰할 것이 많다.

 

 

#정동극장의 선택

연기, 음악, 무대 심지어 좌석까지 모두 훌륭하다. 20대 후반부터 추천하며, 나이가 많을수록 보고 느끼는 바가 많을 것 같다. 자신이 기성세대라는 생각이 든다면 무조건 추천이다. 부모님과 함께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뮤지컬을 바탕으로 대본집을 내면 바로 살 것이고, 이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출간해도 베스트셀러 예감이지만,

 

#배우라는 압도적인 텍스트

이 쇼, 이 연기, 배우를 통하지 않고 넘어온다면 독자들은 풍부하고도 압도적인 텍스트를 놓치는 일이 될 것이다. 배우의 존재 이유란 무엇인가? 이것이 연기로구나, 이것이 뮤지컬이로구나, 이것이... 극의 반대편에 앉아서, 관객으로 있을 수 있어서 기뻤다.

 

 

#단순한 인생이라는 것은 없어, 모두가 놀라운 삶

유원지에서 인형탈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 있다. 상식적이라고 말하는 얕은 수준에서 그가 어떤 사람일 것 같은가? 체력이 좋고, 비교적 단순한 아르바이트를 좋아하고, 사람과 직접 대면할 일이 적은 일을 좋아할 것이고, 직업 경쟁에서 탈락했거나 진입하지 않았고, 그 임금수준으로 영위가능한 삶을 살아갈 것이고, 탈을 썼으니 연기의 일환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고...

 

그러나 한 사람에게 쌓이는 인생은 이렇게 녹록하고 쉽게 읽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원숭이 인형탈을 쓴 저 사람, 탈을 벗으니 72세 노인인 것도 놀라운데, 과거에 파라디수스 공화국의 악명높은 독재자의 4번째 대역 배우였다는 사실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가 나에게 자신의 인생을 다짜고자 들려준다면? 그것도 엄청나게 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연기하면서 보여준다면?

 

이상한 노인이다.

그리고 이것은 노인 이후 세대의 사람들이 할 법한 생각이다.

물어본 적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다. 지금을 사느라 고될 뿐.

 

#독재사회에서의 성장을 삶의 배경에서 지울 수 없는 조건이라면?

독재로 축약될 수 있는 과거를 지나온 사람들. 네불라는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것 같다. 독재자의 대역 배우였다는 사실은 너무나 극적이지만, 현재 한국의 대부분의 저 연령대도 독재라는 사회적인 그늘을 삶의 배경에서 지울 수 없었다는 점을 상기해볼 수 있다. 그러나 90년 00년대 태어난 청년들은 그들이 겪거나 만든 과거를 역사로 배운다. 그것이 어떻게 삶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반사적으로 되는 시대. 저렇게 무지막지한 시대를 살았군요... 그 와중에 그들은 메타버스의 시대에서도 살아가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의 형태와 국가의 흥망을 보고도 아직도! (그리고 이것은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자신을 반추하는 삶. 그 후회를 덜기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인생에서 가장 주요한 시기가 그들에게도 있었으나 어린 세대들에게 무대를 넘겨주고 유원지에서 인형탈 아르바이트생으로 근근히 삶을 꾸려나간다. 아무도 자신을 봐주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아서, 자신을 말할 기회도 찾지 못하는 노인들이 아닌가? 네불라가 자신의 삶을 말하는 것, 말할 수 있는 것과 그 삶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어떤 존재를 위해 귀를 내어줄 수 있느냐 없느냐. 어떤 존재를 이 사회에 가시화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러기에 우리가 사는 사회의 무대는 너무나 좁고 높은 것만 같다. 네불라는 유원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벤트로 방문할 뿐인 유원지에 자주 오는 수아를 지켜본다. 그리고 사진촬영을 빌미로 자신의 인생의 주요한 장면을 연기하고, 들려주기로 결심한다.

 

#이십대의 입장이 궁금하세요?

수아는 자주 가는 유원지에서 인형탈 사진을 찍었을 뿐이었는데, 방어적인 태도가 어느새 자신을 사진작가로 만들었고, 네불라의 사진촬영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수아는 마트 직원이다). 수아는 자기 자본이 적은 20대를 닮았다. 이제 막 사회로 나왔는데, 사회에 자기 한 자리 찾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웠으며, 능력있는 자신이 되고 싶어 한다. 그녀가 일하는 곳이 마트라는 것이 새롭다. 자신의 하루하루가 급급한데 언제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랴. 그러나 고액 사진촬영 일이 들어와 네불라의 인생을 듣게 된다. 물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었지, 언제 인생을 연기하고 그 많은 일대기를 들어야 한다고 했냐구요. 그 사람을 잘 알게 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다라는 네불라의 인식이 그럴듯해 수긍할 수 밖에 없다. 

 

 

#고질적인 문제가 세대를 거듭해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재자의 정치와 사내에서의 정치는 비슷하다. 그게 왕이 아니라 한낱 매니저의 자리일지라도. 

 

#인간에 대한 냉소보다 작은 친절을 나누기

다른 사람들이 결국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 상대를 믿는 것. 

 

 

#오리지널

'너만의 것'을 해봐라는 말만큼 황당한 말. 내가 지금까지 보여준 준게 '나만의 것'이에요! 그것을 부정당하는 거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기교는 모방으로 시작한다. 네불라는 다른 사람을 따라함으로써 정점에 올랐다가, 너만의 것을 해보라는 말을 듣게 되는 순간 그 쓸모를 다하고 자신을 부정당한다. 배우를 그만두지만 우연한 기회에 독재자를 따라하게 되어, 심지어 독재자보다 더 독재자스럽게 연기하는 사람이 되어, 독재자 본인을 가르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독재자를 연기하느라고 생긴 맹점은 자신이 써내려가지 않은 대본으로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껍데기는 물론 천인공노할 죄에 가담하게 된다. 자신의 대본을 갖지 않은 죄. 자신이 연기할 대상을 알려고 하지 않은 죄. 좀더 아프게 말하자면, 남의 영화를 훔쳐서 자신의 인생을 그럴듯하다고 속이기. 남의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것. 네불라의 죄는 그것이다.

 

#사회적인 위치를 자신과 동일시 하는 사람들

그러나 이것은 비단 네불라의 죄만은 아니다. 사회에서 우리가 얻게되는 지위는 물론 당신의 노력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우연의 산물에 더 가깝다. 물론 당신의 재능도 있겠지만 그것조차 우연에 가깝다. 그것을 자신과 동일시켜서 살지는 않는지? 당신이 잘난 것이 아니라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이 유리했던 것이다. 

 

 

#목적이 있는 입양

미국으로 입양? 장애인 동생을 돌보기 위한 목적의 입양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런 현실도 많을 것 같다. 수단으로 키워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신으로 태어나고, 자신으로 살아가야하니까. 누군가를 위한 삶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굿걸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 가족이라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했던 수아의 행동들. 미국까지 갈 것 없이 K장녀들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굿걸로 키워지기. 착한 아이로 성장하기. 장애인 동생을 조명으로 연출한 장면이 먹먹했다. 

 

#장애인 동생을 수단으로 그린 것 아닌지? 

수아의 인생을 돌아보기 위해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지? 장애-로 대표되는 어떤 것이 연기로 보이는 것이 불편하면서도-단편적인 이해밖에 가져오지 않으며, 장애인에게 발화 기회가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장애인이 극에 출연했다는 것을, 사회의 일원으로 무대에 가시화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스포

마지막의 수아가 화해하는 대상이 장애인 동생이 아니라 과거의 그냥 자신이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여전히 장애인 동생이 대상으로 그려지는 것 같아서. 그러나 수아 자신이 수단이든 무엇이든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만들어준 사람이니까, 소식을 끊고 다시 손을 내밀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리고 타인과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 하고 기쁘고 우는 것이 좀 더 나은 인생 같다. 

 

#네불라

라틴어로 아지랑이라고 한다. 덧 없는 인생. 

 

#삶은 진짜를, 때로는 예행연습도 없이 펼친다. 

어빙 고프먼, <자아 연출의 사회학>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중에서

 

배우님들

#윤나무 배우 처음 봤다. 9세에서 노인까지 연기가 놀랍고 먹먹하다. 나는 특히 그가 자신의 인생의 젊었던 시절을 연기하고 다시 72세의 노인으로 돌아와 느려지고, 허리가 굽고, 쓸쓸하게 장비를 챙겨 퇴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땀흘리고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네불라, 윤나무 배우. 내가 이렇게 편하게 배우들을 봐도 되는 것인지? 이렇게 어려운 극을 꼭 인간을 통해 무대위에 실시간으로 올려야 했는지? 그냥 책으로 출간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네불라가 되기로 한 것이 감사한 연기였다.

자신을 태워서 관객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배우라니. 

 

모든 배우가 자신의 역할 이상을 보여준다. 매우 많은 역을 일사분란하게, 저 사람이 저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보여준다. 6명의 배우가 무대를 그야 말로 꽉 채운다.

 

안창용 배우는 특히 몸을 굉장히 잘 쓰는데, 한 순간으로 독재시대에 이입하게 하는 절도있으면서도 공간을 바꾸는 춤이 인상적이었다. 

 

음악도 좋았다. 2층에 위치해서 무대를 더 넓게 쓸 수 있었다. 

배경을 미국으로 삶았지만 이질적이지 않았다. 이미 한국도 다문화 사회이니까.

마트가 배경이 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트만큼 자본주의 사회를 보여주는 곳도 없다. 마트 카트가 유원지의 회전목마가 되는 장면도 재미있었다.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파도는 쉼 없이 밀려오는데/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제 자리에 서서 뛰어오른다/

 

내 키만큼 얕은 바다가 있을까? 그걸 바다라고 할 수 있을까?

저마다의 인생이 다르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쉽게 알수 없고, 판단할 수 없으며, 그 각기의 힘듦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또는 거세게 밀려오는 다른 것들로 인해 내가 나일 수 있을까 라는 물음같기도 했다. 적응한다면 그곳에서 보트를 탈수도 있고, 수영을 할수도 있겠지. 또는... 어떤 자는 바다를 떠서 비행기를 탈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곳이 바로 세상일 것이다.

 

그러나 수영을 배운자에게는 내 키만한 바다는 다이빙 할수 없는 곳이다. 뛰어들 수 없으니 더 멀리 나아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 리스크가 있어야 멀리가는 삶. 이런 것도 생각해 보았고.

 

내 무릎만한 높이의 바다에서라도 서 있는 건 힘든 일이다. 바다는 수평으로 움직이려고 하고, 나는 그곳에 수직으로 서 있으려고 하니까. 그러니 사회를 잘 만들어야 나도 잘 성장할 수 있다. 라는 생각도 해보고. 

 

#한 남자가 쇼를 빌려 자신의 인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가 생각나기도 했다.

 

#왜 이런 제목이었을까 왜 이런 포스터였을까 왜 이런 카피...

나라면 제목을 '쇼맨'-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라고 짓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팜플렛과 포스터를 그렇게... 내보내지도 않았어! 그리고 저 헤드카피도!! 

 

 

::5공화국 같은 시대를 살아온 어떤 남자가 자신의 삶을 연민하면서도 자랑하는 정치 이야기 같은 제목과 포스터와 썸네일에도 불구하고 보러 온 사람들이 승자다... 오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제목 및 포스터 후보

 

1. 네불라와 수아

(포스터는 원숭이 인형탈을 쓴 네불라)

2. 파라디수스 공화국의 비밀

2. 네불라와 다섯 번째 배우 이야기

3. 어떤 늙은 배우의 믿을 수 없는 삶

 

 

뮤지컬 쇼맨 다음엔 제목과 포스터 고민해주길. 

 

5/15일까지. 꼭 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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