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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신용목
잤던 잠을 또 잤다.
모래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잠이었다.
누구의 이름이든
부르면,
그가 나타날 것 같은 모래밭이었다. 잠은 어떻게 그 많
은 모래를 다 옮겨왔을까?
멀리서부터 모래를 털며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모래로 부서지는 이름을 보았다.
가까워지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의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잤던 잠을 또 잤다.
꿨던 꿈을 또 꾸며 파도 소리를 듣고 있었다. 파도는 언
제부터 내 몸의 모래를 다 가져갔을까?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나는 돌아보았다.
누군가의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에 실린 첫 시 <후라시>부터 벌써 눈이 동그래진다. 제대로 바라보기까지 눈이 좀 아파야할 것 같다.
'동그라미는 왼쪽으로 태어납니까/오른쪽으로 태어납니까//왼쪽으로 태어난 동그라미의 고향은 오른쪽입니까 어디서부터/ 오른쪽은 시작됩니까'
방향을 알리는 일이 의미없는 동그라미. 그러나 동그라미의 시작을 점찍지 않으면 동그라미를 부를 수 없는 한계의 인간.
영화 <컨택트>에서 외계의 존재가 그리는 동그라미가 생각났다. 한 가운데 소실점으로부터 일순간 생기는 동그라미가. 이 둘의 동그라미는 형태가 같되 시작이 다르고, 때문에 서로의 동그라미를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아는 언어를, 동그라미 그리는 방법을 떠나야 가능하다.
일순간에 켜지는 후라시의 동그라미에는 시작도 끝도 없고 그 빛을 본 사람은 모래알만큼 많았을텐데
그 중에서 동그라미의 태생을 궁금해 하는 인간이 얼마나 귀하고 드문지를.
<모래시계>는 참으로 구태한 것들로, 모래와 잠와 누군가의 시간으로 뒤집고 뒤집는 것으로 끝이 없는 시계 속의 인간을 그리고 있다. 스스스 떨어지는 모래들. 산을 만들고 다시 반대편에 쌓이는 모래들. 나는 이쪽 편의 호리병에 있다가 다시 저쪽편의 호리병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산다. 때문에 무한정한 시간의 누군가의 꿈속에서 내가 있는 일이 가능해지고. 어느덧 몰려온 잠은 나의 꿈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라도 다른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곳은 나의 잠이야' 그러니 누군가가 나를 부르지 않아도 나를 부르는 것처럼 내가 뒤돌아보는 일이 가능한, 끝없는 시간의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가.
울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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