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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이층집

_봄밤 2017. 7. 18. 22:55




우편함이 없는 생활은 이 도시에 처음 왔을 때 알았다. 우편함이 없어도 무방하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친구들네 집에 같이 살 때. 가끔에야 오는 것들도 카드 명세서 무슨 고지서가 다였으니까 별 상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갖추지 못하는 것은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떨어져 나가도 상관없는 것들부터 시작된다. 그건 당연히 갖춰야 할 것은 아니니까. 흠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제 집 현관 바닥에 떨어진 소식을 줍는 일, 우편을 전해주는 이가 그것을 다소곳이 바닥에 붙이듯 놓아줄리 없다. 그 집네 현관 어딘가에만 있으면 된다. 그런 우편은 분실의 위험이 클 것이다. 분실의 이유는 우편함이 없다는 데 가장 클 것이다. 사소한 예의를 포기하는 것. 나에게 날아오는 아주 가끔의 소식이 버려지는 일을 태연하게 감내하는 일. 그리고 그걸 허리 굽혀 주워 오는 일.  


낯선 곳이지만 아주 가끔은 내 것도 도착했다. 우편은 손에서 손을 통해 도착하는데, 도착한 곳이 바닥이라는 게 좀 그랬다. 나는 못내 우편함이 아쉬웠지만, 친구들로서는 우편함은 이 집의 터무니 없는 월세 관리비를 원성하는 일에 비하면 얘기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살면 어떤 일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는 걸 얘기하기도 전에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집에도 우편함이 없다. 만든다 만든다 하는게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우편함이 별도로 없어서 주택 모두의 소식이 공유되는 작은 난간이 있다. 난간에 놓아질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계단 한 귀퉁이다. 거기에 한 십분 서 있으면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알게 된다. 그 사람의 이름부터, 그 사람이 쓰는 카드회사, 그 사람을 매달 찾는 어떤 청의 이름 모를 요청들. 달마다 오는 가스 전기 고지서를 찾으려 할때면 무려 백만원 단위의 기록할 만한 고지서로 나를 놀래켰던 집이 2층이다. 그달의 가스비를 얘기하며 어떻게 그런 금액이 나올 수 있는지 한마디씩 걱정하는 것, 가끔의 저녁이었다. 그것은 고무줄처럼 늘었다가 줄었는데, 가장 적게 나오는 달도 숫자 6자리를 유지했다. 금액이 반으로 줄어들 때는 우리는 다행을 공유했다. 그래도 갚아나가고 있다며. 어줍잖게 들어서 알고 있는 세 달 이상 연체는 신용도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는 등의 내용을 상기하며 그러나 이집은 그 기준에 이미 틀린 것은 아닌가. 하고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한 달에 두 번 국가의 두 개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호출하는 곳도 그 집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다고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알아보지 않았을 뿐, 그 어떤 일은 기정 사실로 일어났고, 그걸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끊이지 않고 날라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2층의 사정이었다. 


그 집의 사정은 무엇보다 쓰레기 버리는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집은 20리터짜리 봉투를 썼는데, 그 봉투는 음식물 쓰레기에 가까워 보이는 것도 담겼다 . 봉투 입구는 늘 느슨하게 묶여 있었다. 이것이 미스테리였다. 쓰레기 봉투를 모두 포기할 때 비로소 쓰레기는 버려진다. 그러나 완전히 포기도 못하면서 쓰레기를 밖에 내놓는다. 쓰레기를 명시한 부피를 최대한 채우고 바깥을 여미는 데서 나는 삶의 의지 같은 게 들어 있다는, 믿게 되었다. 그만큼의 의지. 쓰레기와 쓰레기 아닌 것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태도, 그것을 최선을 다해 끊어내고 바깥으로 내모는 모습에서 말이다. 그러나 2층의 쓰레기 내놓는 양상이란, 쓰레기를 버릴 힘이 없는 어떤 이가 가까스로 문 밖으로 툭 하고 내놓은 형태였다. 그곳은 우리가 날마다 오르는 계단이었다. 


삼층에 산다는 것은 그런 2층을 지난다는 뜻이었다. 남의 집 쓰레기를 매일 본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 번은 뭐라고 해볼까, 했지만 그것은 역시 그 쓰레기를 보는 순간 포기하게 되는 게 있었다.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버릴 수 밖에 없다. 라는게 느껴졌다. 최선이라는 말은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모두에게 고른 높이로 쌓이지 않는다. 그건 결코 저번 집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했다. 관리비 4만원은 그런 풍경을 지웠다. 누구나 한 달에 4만원을 내면, 쓰레기 버리는 일은 식은 죽먹기였다. 잘 정리가 되었다. 그러나 여기는 그런 돈을 낼 필요가 없다. 내 쓰레기를 내가 아는 한 관리하는 것도 누가 뭐라고 할 일이 못되었다. 어떤 것이 더 큰 비용인지 나는 비로소 가늠할 수도 있었다. 


몇 달간 그 집이 내놓는 쓰레기를 관찰하고 새롭게 발견한 쓰레기를 공유하는 게 어느 저녁의 우리 대화였다. 그 집에는 이런 쓰레기가 있어. 쓰레기에는 생활이 있고, 욕망이 있다. 그중에 특이한 '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00ml 생수를 한 박스씩 시켜 먹는 듯 했다. 정기적으로 배달하는 것 같았다. 추측컨데 약간 의학적인 용도가 있는 물인 것 같았다. 그것도 상품이었으므로 상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마음만 먹는다면 그 용도를 알 수도 있었다. 언젠가 그 이름을 검색해 봐야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하지 않았고, 그 물의 이름을 잊었다. 아마 그걸 알게 되었다면, 나는 생각치도 못했던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미 원하지 않는 2층의 사정을 알아버리고 있다.


2층 집은 우리에게 '새벽의 세탁기'로 악명이 높았다. 몇 번의 토론 결과 2층 집은 가명의 세탁소를 운영중이라는 주장도 제기 되었다. 굉장히 타당한 주장이었으나, 어쩐 일인지 그 주장은 기각되었다. 다시 추정한 내용은 2층집은 야간에 일을 하며, 매주 생기는 빨래가 이백 벌이라는 거였다. 앞의 주장에 비하면 터무니 없었지만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 정도 빨래라면 그 새벽에라도 매일 빨야하 한다. 왜 빨래가 생겨나는지는 대답할 수 없었지만 빨지 않고는 그대로 둘 수 없는 어떤 일이었을 게 분명했다. 이것이 주 4회 새벽 세탁기를 이해할 수 있는 최대한의 근거였다. 그 일이 무엇인지 상상하는 것을 그만 두었지만, 그런 일이 있다고 하면, 그렇게 매일 빨아야 하는 일이 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악명을 덜지 못했던 것은 그 빨래의 시작이 늘 일요일 새벽 두시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도 익숙해져갔다. 우리는 쓰레기 계단과 기록적인 숫자의 공과금과 무슨 청에서 날라오는 밀봉의 우편을 일상처럼 보게 되었다. 새벽의 세탁기 소리는 아득해져갔다. 그것은 매주 쌓이는 이백 벌의 빨래. 그러던 중, 어떤 기척도 없이, 2층이 이사갔다. 2층의 구조는 우리집과 약간 달라서, 베란다를 잘 보면 집 내부가 보이는데 그게 텅 비어있다는 거였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지금껏 보지 못했던 거대한 쓰레기가 매우 놀랍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이 집 담장 안에 가득 차 있었다. 계단에 내놓은 최선의 쓰레기가 계단 다섯 개쯤 내려간 결과였다. 네모 네모 박스가 하나도 숨이 죽지 않고 사각형으로 탑을 이뤄 버려진 걸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한때 논란이었다가 이름 잊혀진 정체모르는 물박스였다. 나는 마지막까지 쓰레기를 버리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한 모습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쓰레기는 어떻게 치워졌을까? 어디서 알고 오신 폐지 수집하시는 동네의 연로하신 분들이 네모를 납작하게 접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대강의 것이 치워지고, 냉장고 등의 가전은 또 이 골목을 도는 트럭이 수집해갔다. 그러고도 쓰레기는 한 짐이 남았다. 


우리는 그날 저녁 낑낑거리며 나머지의 쓰레기를 버렸다. 너무하네, 어쩌네, 하면서 심한 욕은 하지 못하고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그러고도 버리지 못한게 하나 있는데, 상판과 분리된 거울이다. 이 거울은 다 부서진 작은 서랍장 뒤편에 숨겨 있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는데, 아직 아무도 가져가지 않은 마지막 쓰레기로 남았다. 요새 나는 그게 어떻게 깨지지는 않을까 가끔 걱정한다. 


주말에 2층 집의 주인이라는 사람과 만났다. 나를 보더니 갑자기 2층의 누수 아님을 확인하는 내용을 설명했다. 그건 나와 상관 없는 일이었고, 내가 안다한들 해결되지도 않는 일이었는데 엉겁결에 2층 집도 들어가 보게 되었다. 짐이 모두 빠진 2층 집은 놀랍게도 우리집 보다 더 좋았다. (두달 간 페인트칠을 하고 모든 조명을 바꾸고 가구를 사들인 우리집보다) 심지어 뒷베란다가 있어서 더 넒었다. 더 시원했다. 어째서 나갔을까? 2층의 집주인은 내가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이 하기 시작했다. 이 집 사시는 분과 굉장히 안좋게 끝났다며. 소송 끝에 내보냈다고 했다. 무엇 때문이냐고 묻지 않았지만, 조금 더 그곳에 있었더라면 아마 그 사정까지도 모두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이것이 지난 2층 집과의 기록이다. 2층은 비어있다. 거울은 아직 그대로 담장에 비스듬이 기대져 있고. 세를 놨으니 다시 누군가 들어올 것이다. 아는 초조한 마음으로 그 언제를 기다리고 있다. 그 전에 우편함 같은 걸 만들어 달아놔야겠다는 다짐과. 그러나 한 달에 많아야 십 몇만원의 공과를 자주 체납하고, 쓰레기를 제대로 묶어 버릴 힘이 없는 중년의 아픈 여자와 중학생 남자아이가 어디로 이사갔는지를 궁금해 하는 것은, 이 도시에서는 이 동네가 아니면 더 이상 집을 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변두리로, 조금 더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이백벌의 빨래와 세탁기를 싣고서. 그렇다면 그녀의 일은? 그녀의 일과 그녀의 이층 집을 번갈아 가며 본다. 우리는 천장과 바닥을 공유했는데,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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