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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말하자면

_봄밤 2017. 7. 10. 14:55




임대인은 아마도 자신이 할 바를 다 하려는 사람인 것 같다. 라고 믿고 싶다. 그녀는 아마도 최선을 다해 이 집을 고치려고 하고 있다. 라고도 믿고 싶다. 하지만 어젯 밤 비에 또 벽에 물이 샜다. 이 집의 누수는 예삿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누워서 천장을 보면, 전등에서 한 이만큼 떨어진 곳은 몇 겹의 벽지가 발라져 있는지지 보인다. 비가 오면 천장이 한 숨 무거워지고, 그 면면들이 습기로 부해지고, 여러 번 발렸던 얼굴이 드러난다. 서너장이 정사각형으로, 다시 직사각형으로 그보다 더 큰 사각형으로, 그 밖에 곳도 이렇게 저렇게 울퉁불퉁 하다. 천장에 빗물이 고였고 그게 아마 샜던 모양같다. 지금은 어찌어찌 잘 막아 놓은 거겠고. 어찌어찌.  


옥상 방수공사를 하고 한 시름 놨는데, 이제는 기와가 문제인 것 같다. (라고 밖에 생각을 못하겠다) 집주인이 말하기를, 아니 집주인이라고 칭하는 이 말도 너무 우스운데, 익숙하지 않지만 임대인이라고 부르자. 임대인의 요는 이거다. 자신도 누수가 있는지 모르고 이 집을 샀다. 부동산과 전 집주인과의 문제가 엮여 있어서, 최대한 수리를 하겠지만 못할 수도 있으니 그리 알라. 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전화로 싸울 수는 없었고 내일 온다기에 보시라고 했다. 


그리 알라니, 그건 당신이 그 전 집주인과 부동산과 연락해 해결하고 나에게 마땅히 조치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게 바로 아는 것이다. 


이 비를 나는 어느 선까지 감내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비가 내 이마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벽 머리에서 울숲하게 물들어가 바닥까지 물이 벽지위로 올라오는 것을 그저 지겨보는 일을 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이것에 익숙해진다면, 아마 가난이라고 말하는 것에 한 차례 익숙해지는 일일텐데, 그게 나를 위해 얼만큼 좋은 일일지 누군가 말해줄 수 있을까? 나는 물론 이곳에서 이렇게 살 수도 있겠지만, 그게 나의 존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지금의 나는 알 수가 없다. 한가지 분명한 건, 아마 얼마간은 내가 부끄러울 거라는 것이다.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는 두 손이, 이 상황을 누구에게 말해 무엇도 해결 할 수 없는 사실이. 그런데 내 이마에 비가 떨어지게 된다면, 나는 이사를 준비하게 될까? 이렇게는 살 수 없다며. 분노하며, 하지만 여전히 이마에만 비를 맞았으므로 그 옆에서 잠을 계속 청할 수도 있다. 여름이 지나면 비는 그칠테니까. 그런 이유들로 나를 자꾸 밀어내며 살 수도 있다. 그리고 나를 밀어낸 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잊은 듯 하여. 

나는 크고 훌륭한 집을 바랐던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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