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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잠이 깼다. 들이칠까봐 방 창문과 주방 창문, 그리고 베란다 창문을 다녀왔다. 비는 베란다 창에만 쏟아지고 있었다. 문을 반쯤 닫았다. 남은 곳에는 비가 아침까지 들이쳤고, 열어놓은 곳은 젖어 있었다. 아침에 나가기 전 걸레로 닦았다. 닦으면서 걸레는 왜 어이로 끝날까. 나는 안쪽으로 구부러진 발음이 마땋찮다. 걸레라면 걸래가 되어도 좋을텐데. '걸'이라는 큰 글자에 '레'는 붙어서 그것이 결국 약하고, 잘 찢어지고, 부서지는 것처럼 약한 글씨가 된다. 걸과 맞설 수 있도록 웬만해서 부러지지 않는 '래'가 오면 좋을텐데. 그래서 닦이는 더러운 것들에게 더러운 얼굴이 되어도 울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너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걸레는 레로 끝나서 구겨지는 것 같다. 래가 되면 좋을텐데.
어제 거울을 보며 내가 '여기'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얼굴을 하나하나 보았다. 내가 여기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은 차가운 손으로 옮겨간다. 냉장고를 열면 네모난 얼음이 있는데, 그 얼음은 실은 사각의 선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냉기로 꽝꽝 얼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윤곽을 채우는 순간을 더해야 비로소 얼음을 설명할 수 있다. 차가운 물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요새 얼음이, 그것도 사각의 얼음이라는 단어가 자꾸 있다. 한 손에 그걸 두어개 쥐고, 녹지 않는 얼음을 손일 얼얼하게 뭉그리고 있는 것 같다. 주사위가 아니어서 던져지지도 않고, 손으로 한참 만졌던 거라 입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나는 그져 손 안쪽이 뻐근하게 그걸 잡고 있을 뿐이다. 요새 손을 쓰는 일이 그렇다. 어딘가 뚫렸다고 하기에 내 손은 예전과 같고, 보이지 않는 얼음을 두 어개 쥐고 있는 것 같다. 손이 아프다는 이야기인가. 차다는 이야기인가. 할 일을 잡기 위해 어려워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겠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말하는 일에 대해 친구는 말해주었다. 그게 되든, 되지 않든, 중요하다고.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을까? 나는 공부하고 싶다. 공부를 해서 알지 못하는 걸 알고 싶고, 내 손으로 내가 너끈히 살아질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바닥 한 바닥 쓰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것만큼 나의 한계와 나의 자랑을 확인하는 일이 없다. 나는 머리를 하나로 잘 묶고, 내가 생각했던 음식을 이제 어렵지 않게 차려낼 수 있다. 방을 치우는 일이 더이상 나의 무엇을 쓰는 일이 아니다. 그건 내가 되어가는 일이다. 가끔 이 낡은 집, 그러나 빛과 바람이 잘 들고 살아본 중 제일 넓은 집 벽에 기대 반대쪽 창을 바라볼 때, 이 집에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아서 믿기지 않을때가 있다. 내가 쓴 글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주기를. 나를 믿을 수 없는 일처럼 만들어 주기를. 그러기 위해서 나는 좀 더 읽고, 자주 쓰고, 괴로워야한다.
주말에 허수경의 시를 읽었다. 그녀의 시는 읽는 것이 괴로워 한 번에 한 권을 다 읽을 수가 없다. 괴로우면 뒤편으로 도망쳐, 신경숙이 쓴 허수경의 삶을 읽는다. 그러나 녹록치 않다. 이십대 중반, 전혀 모르는 것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가는 삶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악물고 살았을 그녀의 시간이 생각되지 않는다. 그녀의 이력은 짧게만 쓰여진다. 한 일년 독일어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독일에 갔다. 그리고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 그런 삶. 이렇게 축약될 수 있는 삶. 그녀의 시는 그런 삶으로 이뤄진다. 에세이를 주문했다.
말하자면 허수경의 삶의 자세를, 어떻게 내것으로 감쌀 수 없는 그것을 붙들고 괴로웠다. 나는 아주 작고, 또 1년이나 2년의 앞날을 예측하거나 점쳐볼 수도 없고, 내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되어야겠는지 자신이 없고, 그런 것들이 지금 나라는 그런 생각을 하며.
비가 한참을 온다. 비가 오는 월요일은 상냥하다. 신발이 다 젖었지만 곧 마른다. 비는 여기 모든 곳에 내려 잠깐을 머물 뿐이다. 비는 계속 저 아래로, 깊이로 가는 중이다. 신발이 젖어 있었다는 것은, 내가 그 빗속을 한참 있었다는 일. 내가 빗속에서 움직였다는 일. 살아있음이 티 나는 일. 비에 젖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대체로 미끈하고, 눈이 선한 것들. 빗 속에 있으면 그런 기분이 잠시 될 수 있다.
어렵지만 매일매일이다. 쌓인 것이 없다면 조금씩 쌓으면 된다. 그것이 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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