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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의 어느날
날아온 고지서는 주말에 불이 되어 발등에 떨어졌다.
6자리의 미납 금액, 3개월분. 기한이 고작 삼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데 조금 놀랐다. 3일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가. 신용에 불리하게 작용하도록 내역을 올릴것이다. 통신사 신규 가입과 변경이 어려울 것이니 알아서 하시라. 더불어 인터넷도 끊김(ㅋ)... 그동안 잊지않고 낸 날짜가 십수년. 모 통신사의 멈추지 않는 성장에 청렴했던 나의 납부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이 없는 세상에서라면 이런 고지서도 없었을텐데. 모든 것이 광적으로 빠른 시간에 쳐져버려서 9세기쯤에 남겨지고 싶은 기분이 든다. 앞을 보면 그런대로 다시 뛰어가는, 사람들. 사람이 아니라 무엇들. 보이지 않으나 움직이는 무엇이 보인다. 안개처럼.
그러모은 무릎이 욱신거리고
고지서. 연체 3개월. 납부기한 3일. 머리 위로 청량한 사진 한장이 떠올랐다.
상쾌하게 펼쳐진 하늘. 마음이 뚫릴 것 같은 조각상. 여기는 이탈리아 밀라노 증권거래소 앞이다.
2010년 설치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으로 작품영 L.O.V.E. 사랑으로 띄엄띄엄 읽힌다. 물론, 작품이 제목처럼 보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 작품을 책에서 처음 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작품명'을 알게 된 것이지. 그 책은 수많은 예술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사진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비평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읽어야 했다. 궁금한 작품들은 따로 찾아보았지만 설치미술 같은 작품은 사진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비평은 A를 이해하는 B의 손을 따라가는 일 아닌가. 세상 참 좋아졌으므로 밀라노에 가지 않아도 사진으로 작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아주 이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책 <미술과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미술'과 '정치적인 것' 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하겠고 둘을 대등하게 잇는 '과'역시 주목해야겠다.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 '미술'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 것임을. 그리고 그것은 비단 비평뿐만 아니라, '미술' 그 자체도 역시 그렇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위 작품은 망설임도 시간의 제약도 없이 영원히 욕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파시스트식 경례를 하는 거대한 오른손이다. 가운데 손가락을 남기고 다른 모든 손가락은 절단한 모습이다. 작품에는 첫 제목이 있었다고 한다. '깨끗한 자에게 모든 것이 깨끗하다' 저 굳건한 패기에 지금의 사랑스러운 제목을 다시 읽는다. 사랑이라고.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이 무엇이길래 이 작품의 이름이 사랑이 되었는가. 사랑을 이렇게 그리는 미술, 현대 미술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가 유연한 자본주의에 대해서 한방을 날렸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들을 살펴본다면 그러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가 귀족적 농담처럼 속세에 대한 탐미적 게임의 장을 펼쳤다고 말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고약한 게임의 장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유연한 자본주의가 용인하는 비판 혹은 저항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예술의 가능성은 어떤 차원에서 노동과 삶의 일치를 위해 경주하는 창조적 과정 속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늘 그 운동에 대해서 흥미로운 시선을 던졌으며, 그 결과물인 작품과 노동의 주체인 작가에 대해서 존경을 표했다. 그러나 상황은 변화됐다. 자본주의는 비물질적인 것을 자본의 영역으로 포섭하면서 그 유연성을 극대화시켰다. 견고한 것이 녹아 없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녹아 없어진 그 공기 속에서 자본을 증식하기 위해서 자신을 변화시켰다.
저자는 하늘로 뻗은 거대한 손가락과 그것을 만든 작가. 그리고 작품이 서 있는 장소를 관통하는 공기를 읽는다. 자본이 작품이 서있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까. 다음 사진을 보자. 익숙할지 모르겠다.
신세계백화점의 열린 공간에서 대중과 마주하는 <세이크리드 하트>는 고객들이 즐겁고 흥미롭게 관람 할 수 있는 거대하지만 사랑스러운 선물로써 서울의 스카이라인과 어우러져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낼 것입니다. 또한, 신세계백화점이 지향하는 백화점과 갤러리의 경계를 허물고 패션과 미술이 살아 숨쉬는 대표적 감성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해본다. 얼마 전 한 백화점은 현대미술계의 슈퍼스타인 한 작가와 지겨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JEFF KOONS LOVES SHINSEGAE' 그가 신세계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도 어떤 측면에서 새로운 유토피아, 신세계를 꿈꿔왔으며, 그것을 작동시켰기 때문이다. 정치적 지평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아방가르드들의 도전은 언제나 신세계를 향해 있다. 신세계는 그의 세계관이 필요하다고 그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신세계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그는 신세계와 함께한다. 물질적인 거소가 비물질적인 것이 상품으로 완벽히 구현된 초현실적 장소에서 그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한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지겨운 사랑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다.
고지서에서 나와 지금도 밀라노 하늘을 향해 凸를 보여주는 <사랑>이라는 작품을 보았고, 자본의 어디쯤에 뒤섞여 어떤 얼굴을 해야할지 모르는 예술의 표정 앞이었다. 그리고 다시 신세계 백화점 본관으로 도착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가장 노골적이지 않다. 사랑한다. 제프쿤스는 신세계를 사랑해. 신세계가 원했던 백화점과 갤러리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성공한 듯 보인다. 그곳에서 사람이 있을까. '고객'들이 있을 뿐이진 않았을까. 신세계가 원하는 표정으로 쇼핑을 하고, 신세계가 원하는 동선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선물과도 같은 <세이크리드 하트>를 본다. 그리고 2014년, 사람들은 거대한 오리를 만났다. 무엇과 만났는지 잘 알지 못하고, 그건 오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9세기쯤, 오리도, 빌딩도 모두 치워진 자리를 떠올린다. 이제 삼일 뒤, 고지서를 치우고 나면 인터넷을 걱정없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세계가 원하는 표정으로, 신세계가 원하는 이동을 다시 시작한다. 자본과 혼연일체 되어서 예술의 진정한 속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가운데 사랑이 지겨워지는 지경은 비단 예술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저자는 현대 미술에 빗대 지금을 살아가는 태도를 겨누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9세기쯤에 살고 싶다는 생각과, 9세기 후에도 여전히 사랑이 사랑으로 읽힐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때는 자본 아니라 무엇이 사랑과 합치될까. 무엇이 오더라도 이 고유한 의미를 읽을 이들이 여전히 있기를. 내가 기다리는 신세계는 어떤 때가 아니라 '그런 내'가 있는 곳인 것 같다. 그런 내가 아니라면 내가 바라는 신세계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비평이 미술과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가다듬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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