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크리스토퍼 히친스/김승욱/알마
대답해야 한다-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는 두 가지 태도가 있다. 말기 암을 대하는 태도와 죽음에 신을 초대하지 않는 태도. 이 책의 무게는 '죽음에 신을 초대하지 않는 태도'에 기울겠으나, 그것보다 말기 암을 대하는 태도에 집중하고 싶다. 그는 지치지 않는다. 병을 알고,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이 과정이 여과없이 나타난다. 고통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 하면서도 신에게 기도하는 이들에게 호통하기를 잊지 않는다. 말기 암을 대하는 태도에는 다시 두 가지 장면이 있다. 히친스 자신이 암을 대하는 장면과, 암에 걸린 자신을 대하는 다른 이들의 얼굴이다.
투병기에서 그는 고통을 설명하기보다 조롱한다. '발진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것이 '속에서'어떻게 아픈지를 설명하기가 지난하기 때문이다. 나는 며칠씩 줄곧 드러누운 채 가능한 한 침을 삼키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96'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글이라서 일그러진 표정을 짓게 된다. 그러나 이런 고통에도 그의 꼬장꼬장함은 자신을 괴롭히는 말기 암과 상관없이 살아 있다. 그에게 죽는 것은 '나'의 의지로 '하는'것이고, 병은 그에 따라 수동적으로 죽게 되는 존재일 뿐이다.
암 덩어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유기체가 필요하지만, 암 덩어리는 결코 살아 있는 유기체가 될 수 없다. 그것의 악의(내가 또 같은 짓을 하고 있다)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것이 '최선'이 곧 숙주와 함께 죽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숙주는 암 때문에 죽어버리거나, 아니면 암을 박멸하고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32
그런가 하면 드문드문 천진한 얼굴로 '온전한 삶'을 그리는 모습도 나온다. 되찾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자신에게 물어보고,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대답하는 장면이 그렇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히친스의 최후의 나날들을 기록했으나 눈물과 거리 멀다. 눈물은 쏟아져 몸 밖으로 나가는 것 아닌가. 몸을 떠나 죽어버린다. 오히려 몸 깊숙히 도는 피와 가깝다.글을 읽을 뿐인데, 불현듯 몸 끝을 향해 뻗는 피의 열기를 느끼게 된다.
그럼 내가 되찾고 싶은 것은? 우리 언어에서 가장 간단한 단어 두 개를 가장 아름답게 늘어놓은 것, 말의 자유다. 84
암에 걸린 자신을 대하는 다른 이들의 얼굴은 이렇다. '많은 사람들이 이쪽에서 원하지도 않았는데 공짜로 조언을 해준다. 그들의 조언에 따르면, 나는 지금부터 당장 복숭아씨 가루를 먹어야 한다(아니, 살구씨였나?). 고대의 문명인들은 이 최고의 치료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요즘은 탐욕스러운 의사들이 이 방법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내게 편지를 보낸 또 다른 사람은 테스토스테론 보조제를 잔뜩 먹으라고 재촉했다. 아마도 사기를 높이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특정한 차크라를 열어 수용적인 정신상태를 만들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51'
각종 처방이 난무하는 까닭은, 병과 함께 하는 삶을 그가 할 수 있는 완전한, 최선의 삶으로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섣부른 연민을 동원한다. 필요없는 도움을 계속한다. 자신의 선함을 증명하는 도구로 투병하는 이를 이용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를 걱정하거나 도움이 되고 싶거나 이해하고 싶다면 차라리 오늘의 날씨에 대해 묻는 것이 좋다.
이제 죽음에 신을 초대하지 않는 장면을 보자. 그는 삶도, 죽음도 온전히 내가 갖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에게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자신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신은 왜 내게 뇌암을 내리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나는 겁에 질려서 의식이 반밖에 없는 천치가 되어 마지막 순간에 사제를 불러달라고 악을 써댔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아직 정신이 말짱한 지금 분명히 단언하건대, 그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굴욕을 주는 존재는 사실상 '나'가 아닐 것이다34
이곳에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는다. 낫지 않으면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나으면 그때는? '만약 내가 병을 이겨낸 뒤에 신앙인들 쪽에서 흡족한 표정으로 자기네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고 주장하면 어쩌지? 그것도 왠지 짜증스러울 것이다.' 40 히친스를 모르는데, 이 부분에서 표정을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는 '기도'에 깃든 정의를-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정의-말하며 그 속에 숨은 의미를 끄집어낸다. 기도라는 평온한 행위 뒤에는 사람들의 오만하고 비겁한 욕망이 있다는 것도 함께.
실은, 앰브로즈 비어스가 <악마의 사전>에서 내놓은 '기도'의 정의와 정신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잘 알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지극히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도: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고백하는 탄원자가 자신을 위해 자연의 법칙을 정지시켜달라고 탄원하는 것.44
여기에 들어 있는 유머를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신이 모든 것을 잘못 배치했다고 생각하지만, 또한 자신이 그 잘못을 바로잡는 법을 신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순 속에는 주도권을 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아니 도덕적 권위를 지닌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다는 불편한 생각이 반쯤 묻혀 있다. 44
이후 '기도'의 정의를 누가 다시 쓸 수 있을까. 보탬이 될 수 있을지, 몽테뉴가 했던 말을 적는다. "종교의 가장 확실한 기초는 삶에 대한 경멸이다." 히친스는 죽음이 앞에 왔어도 기도와 종교에 대한 메모를 하며 생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장은 그가 사망 당시 미완성이었던 메모를 모아 놓았다. '존 다이아몬드에 관한 줄리언 반스의.....121' 라는 구절에서는 책을 넘길 수 없었는데, 말줄임표에서 고통으로 의식이 멈춘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도리질을 하며 그런 것 아니고, 어떤 즐거운 만남이 생겨 그가 잠시 다른 곳에 신경을 썼다는 추측을 해보지만, 추측이란 할수록 온전하지 않아 더욱 안타까운 것이 되었다. 얇은 책을 덮는데 그가 했던 말들이 바스락 거리며 책 사이로 삐져나왔다. 그것을 하나씩 제자리로 넣으면서 책을 덮는다. 읽고 나니 두꺼워진 책. 투병하는 이에게, 그리고 투병하는 이에게 처방전을 들고 오는 이들에게 권한다. 그리고 권하지 않아도, 신에게 기도하는 이들이 듣거나 듣지 않아도, 책은 히친스가 없는 곳에서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끈질기게 물을 것이다. 물음에 대답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서평 > 인문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면에 귀를 기울이면-숨만 쉬어도 셀프 힐링 (0) | 2014.04.14 |
---|---|
결코 '미니'하지 않은 욕망 - 마이 카 미니 (0) | 2014.04.14 |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언어의 탄생과 죽음 (0) | 2014.04.05 |
마음의 이해로 몸을 자유롭게 -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 (0) | 2014.03.31 |
편의점에 없는 것-편의점 사회학 (0) | 2014.03.30 |
- Total
- Today
- Yesterday
- 대만
- 이준규
- 배구
-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 궁리
- 이문재
- 현대문학
-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
- 이영주
- 정읍
- 이병률
- 열린책들
- 김소연
- 후마니타스
- 희지의 세계
- 일상
- 진은영
- 네모
- 상견니
- 문태준
- 이장욱
- 서해문집
- 피터 판과 친구들
- 민구
- 1월의 산책
- 지킬앤하이드
- 차가운 사탕들
- 한강
- 책리뷰
- 뮤지컬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