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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없는 것-편의점 사회학
편의점에 없는 것-편의점 사회학
상비약에서 도시락에 이르기까지, 진열된 빼곡한 물건을 보며 과연 '편의점에 없는 것은 무엇일까'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다. 스넥 코너를 돌면 라면이 있고 맞은편에는 부침가루와 참기름이 있다. 마침내 코너 상단에 와인까지, 어색한 꼬리를 물며 함께다. 와인 마저 일상품으로 비치 된 곳에 무엇이 '없을까'만은, 공간과 어울리지 않음을 묵살하는 목이 긴 병을 본다.
편의점은 아무리 작아도 내가 사는 물건보다 사지 않는 물건이 훨씬 많다. 그래도 없는것은 무엇일지 살피면 우선 '기다림'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편의점이 열리는 시간을 기다려서 가지 않는다. 닫히는 시간에 초조하지 않는다. 편의점은 '그런 시간'이 없다. 그곳은 '언제라도' 갈 수 있다. 이것은 역으로도 가능하다. 편의점 또한 특별한 누구를 기다리지 않는다. 익명의 누구라도 상관없다. 기억할까, 기다림이 없는 곳에 '시간'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바닥에 머리를 대고 잠이 든 시간에도 그곳의 불은 환하다. '셔터가 없다. 설령 있더라도 필요가 없다.' 24. 편의점은 시간 밖에 존재하는 것 같다. 편의점이 문을 닫게 된다면 완전히 자신을 정리할 때 뿐일 것이다. 익명의 소비자들이 무한의 페달을 밟아 편의점의 하루하루를 연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편의점 유리문을 닫는다. 유리문은 편의점의 안과 바깥이 동일한 지점에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같은 시간'은 허구임을 알게 된다. 투명한 안쪽은 바깥을 초월한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때때로 고백해 오지만, 그런것이 대체 무슨 상관인지 알 겨를이 없는 -시간에 쫓기는- 이들은 오늘에 맞춰져 있는 삼각김밥으로 오늘을 때우며 돌아간다.
시간이 쫓기는 이들이 시간이 (의미)없는 곳(편의점) 으로 모인다. <편의점 사회학>은 편의점을 이용하는 당신의 통계를 통해서 '편의점에 없는 것'을 말하고 싶다. 책은 얇다. 그러나 펼치는 곳마다 대체 몇 겹으로 감겨져 있었는지 모르는 눈 뜨임을 보게 될 것이다. 가령 이런 대목. '이는 무엇보다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이 시간 및 공간의 원력과를 통해 사이 시간과 사이 공간을 '비우거나', 숫자나 기호 등을 통해 추상화시켰고, 이에 따라 사물과 사람이 구체적인 시간 및 공간으로부터 '뿌리 뽑히게' 된 결과다.' 116
<편의점 사회학>은'편의점이 동네를, 도시를, 그리고 세상을 덮고 있다'는 명징한 사실로 시작한다. 시작이 끝을 쉽게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을 떠올리며, 세상에 가득한 편의점 '이후'는 무엇일까 궁금해 하며 책장을 넘긴다. 이 책은 편의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편의점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 않'았던 날들과 여전히 '궁금해 할 이유가 없는 날'들에 대한 반성이다. 동시에 현재를 향한 반가운 관심이다. 늘 곁에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편의점을 비로소 파헤침으로써 질서에 편승했던 '나'의 생태 또한 돌아볼 수 있게 된다.
'88만 원 세대의 밥집' 편의점을 살피며 편의점을 사용하는 빈도는 '불능'의 수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편의점을 밥집으로 심심치 않게 이용하는 것은 편의점이 제공하는 밥 이상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다는 고백과 같은 것은 아닐까.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물론 '돈'으로도 환산 가능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먹을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과, 자신의 식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통계 가능한 '전자'에 기울이고 있다. 실제로도 '돈'과 상관 관계가 제일 클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후자에 대한 것도 간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돈이 아니라 시간에 갖힌 불능이라면. 스스로가 자신의 저녁과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을, 끊임없이 무엇을 하는 시간으로 바꾸기를 강요했(받)던 결과라 할 수 있다. 학교를 다니며 자취를 했던 학생은 돈을 버는 직장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편의점 도시락과 오뚜기밥을 먹는다. 시간을 쫓기며 편의점으로 대체하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상태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저녁을 잘 차려 먹고 싶다는 욕망과 손수 차려 볼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실종된 것일까. 아니, 애초에 있기는 있던 걸까. 편의점에 없는 '기다림' 혹은 뿌리 뽑힌 '시간' 처럼.
편의점에 관한 웹툰과 소설을 인용하며 '흥미로움'으로 시작한 연구는 '아이러니함'이라는 끝에 도착한다. 신자유시대와 맞서는 사람들이 효율적인 시위를 위해 양초와 컵으로 특수효과를 보는 편의점 모습을 포착한다. 자연스럽게 편의점-신자유주의에 기댄 모습이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정작 그러한 편의점의 배후가 거대 자본과 자본주의 세계 체제, 혹은 신자유주의라는 사실을 미처 상기하지 못한다.' 158 손을 미끌어져 나가는 허탈함. 우리는 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하지만, 동시에 신자유시대의 무한의 페달을 함께 질끈 밟는 것은 아닌지. 진정한 변화를 위한 움직임은 '무심코' 지나치는 사회의 작은 부분까지 '이해'함에 있을 것이다.
다시, '편의점에 없는 것'을 떠올린다. 그곳에 우선 대화가 없다. 대화를 하는 것으로 편의점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어리석다. 그러나, 편의점에 기계적으로 길들여진 나의 생태를 바뀔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가능하지 않을까. 해가 맑았던 엊그제, 자주 가던 편의점에 김치 부침개를 나눠주었다는 일기가 있다. 물론 편의점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동생 뻘이 분명한 알바 님에게 드린 것이다. 편의점 한 가운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편의점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임하는 방식이나 태도와도 연결'159 된다. 편의점에 간다. 내가 골라야 할 물건을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편의점에 '없는 것'을 본다. 계산대에 올라가지 않는, 편의점에 '없는 것'을 하나씩 들고온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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