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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은 철선의 굽은 곡선처럼 매우 서서히 우회적으로 지금의 형태로 진화했다. 그 형태는 평범하지만 내재된 연관성은 엄청나게 복합적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은, 마치 100개의 클립이 들어 있는 상자 안에서 특별한 클립을 하나 집어내는 것처럼 자의적이고 어려울 수 있다. 이제 문화와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인공물 자체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클립의 꼬리가 서로 엉켜 연결되는 것처럼,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99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는 디자인과 공학에 초점을 맞춘 책이지만, 명확하게 보이는 분야에 권장하면서 진실로 맥락이 닿아 있는 어떤 분야에 추천하는 것을 잊은 것 같다. 아니, 그 '어떤 분야'가 생소해서 이름을 모르고 넘어 간 것일수도 있겠다. '이해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 '고고학'을 배우는 이들에게 유용한 교양서로 읽힐 만 하다. 물건을 '만드는 입장'에서 '물건의 변화'를 바라보면서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이라고 너무 놀라진 말자. 글자 그대로 옛것古을 생각한다考는 분야일 뿐이다. 인공물을 살피는 이들의 눈매는 그것을 만든이의 눈이 오래 머문 곳을 찾는다. 인공물의 시기와 맞물린 흥망, 무엇보다 ‘어째서’라는 물음을 늘 지녀야 할 이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또는, 반대로 고고학적으로 인공물에 접근하는 태도가 디자인과 공학 분야에서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헨리 페트로스키가 포크와 나이프를 나열하고 시간에 따른 변화를 살펴보는 방법은 고고학 수업을 떠오를 정도였다. (더 궁금한 사람은 몬텔리우스의 형식학적 방법과 페트리의 계기 연대법을 참고하면 좋다.) 책의 내용은 경영과 디자인, 그리고 발명가들의 입장에서 유익한 '관점'을 제공하려는 것 같다. 바로 여기에서 고고학적 측면으로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 것 같은데, 어려운 것 아니고, 그저 옛것을 생각한다는 단순한 마음가짐으로 소개해 보려 한다.
일단 포크가 네 갈퀴를 갖게 되기까지 여정을 (고고학적으로)따라가 보자. 포크가 다량 확보되어야 한다. 시기를 알수 있으면 좋지만 알 수 없어도 좋다. 그리고 포크의 원료, 공정의 가짓수, 형태등에 따라 나누는 작업을 시작한다. 포크의 머리, 몸의 길이, 곡선의 휘어짐, 어떤 것이 시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지 캐낸다. 그리고 포크를 사용한 계층의 파악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시기에 통용된 포크라 하더라도 귀족이 쓰던 포크와 일반인이 썼을 포크의 양식이 같을 리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포크의 발달을 살펴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의 발달은 지역마다 다르고 계층마다 다르다. 또한, '복고'를 최초의 출현으로 착각하는 오류는 금물이다. 1920년대 유행했던 옷 스타일이 2000년대 들어와 다시 유행하는 '복고'는 옷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인공물에게도 돌아온다. 21세기인 지금도 백자 세트를 생산해 내는 것처럼 말이다.
포크는 식탁에서 중요하고 싶고, 뽑내고 싶어서 쓸데 없이 열 갈퀴를 가질 수도 있었다. 갈퀴마다 작은 톱니를 세워 음식물을 빠트리지 않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왜 네 갈퀴의 단순한 디자인으로 굳혀진 것일까. 인공물이 가장 발달한 후에는 순수하게 '필요한 기능'과 사회 문화가 '요구하는 부분'을 집중해 오히려 이전보다 쇠퇴한 경향을 보인다. 모든 발전과 양상을 경험한 물건의 최종태는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책상이 직사각형에 네개의 다리를 가진 것은 '생활'이 그런 책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책상은 아직도 다양한 형태를 꿈꾼다. 그러나 그것이 집집마다 쓰이기까지는 멀고 먼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네 갈퀴의 포크가 마침내 괜찮은 것으로 자리 잡아진 후에도 어느 시기에는 갈퀴를 두 개 가진 포크가 유행 했을 수도 있다. 그 시기 유독, 두 갈퀴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대 유행 했다거나, 아니면 유난히 원료인 철이 모자랐거나(전쟁 등으로 인해). 때문에, 물건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원인은 사회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자주 쓰는 것이 가장 민감하게 변한다. 사람은 죽고 없지만, 쓰던 물건들은 남아서 후세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옛것을 보고 생각한다는 학문은 결국 나 이전에 나처럼 살았을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이 책을 단순히 물건의 발달과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생각을 키워주는 것, 또는 앞으로 발명될 물건에 대한 가능성을 따질 수 있는 도구로 덮어두지 않기를 바란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종 다양하게 늘어난 포크를 보면서, 유난히 먹을 것이 풍족했거나 풍족하기를 원했으며, 그것을 사치스럽게 먹는 것을 우선의 가치로 삼았을 사회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물건의 발명에는 그것을 사용하면서 지냈던, 그리고 지낼 사람들의 ‘생활’ 에 관심 갖고 이해하는 일이 우선한다.
인공물의 진화와 유행, 쇠퇴를 읽으며 진실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지점은 디자인과 기업 아이템의 흥망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생활의 변화일 것이다. 기업의 이익 때문에(깨끗해 보임, 정돈된 이미지, 보온효과) 출시됬던 맥도날드의 대합형 플라스틱 폼 포장은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종이 포장을 고수하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가장 유용한 제품은, 삶을 가장 잘 이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란, 현재 살아가고 있음을 충실히 알 뿐만 아니라, 지금 이전과 이후 모두를 고민할 수 있는 것에 있다.
유물을 기술하는 이들은 그 시대 쓰였던 물건의 이름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알 수 있는 물건과 빗대어, 또는 기능을 추측해 이름을 짓는다. 이것에 경종을 울릴 만한 일화가 이 책에 다양하다. 우선
1860년대 영국 버밍엄에서 망치의 종류가 무려 500가지나 된다는 사실에 마르크스는 크게 놀랐지만, 이는 결코 자본가의 계략 때문은 아니었다. 만일 어떤 계략이 있었다면 오히려 더 많이 만들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망치의 종류가 급격히 불어났던 이유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특수하게 쓸 곳이 많기 때문이었다. 257
500가지나 되는 망치의 종류라니! 망치의 이름을 오백개를 생각해 본다. 이렇게 다양한 숫자라니, 아무리 상황이 다르다고 해도, 5세기쯤에도 망치가 열 종 정도는 번듯한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은 무리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당시 전해진 물건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고루하다. 지금의 망치를 자세히 살피면서 거슬러 올라가는 느린 길에 전해지지 않은 망치들의 이름이 있을 것이다.
또 놀랐던 것은 공방에서 도구를 부르는 이름에서였다. 저자는 윌리엄 스미스에 대한 회고록에서 장인의 마음과 공구의 진화에 관한 실감나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어느 의자의 이름은 '퍼진 엉덩이'였다. 옹기장이는 작업실에서 이 의자가 보이지 않으면 "퍼진 엉덩이 가져와!"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른 의자는 '늙은 영감태기'라고 불렀다. 그중 가장 쓸모가 많으면서도 이름이 기묘한 의자는 외발의 '아무도 아닌 놈'이었다. 196
근엄하게 유물의 형태를 추출해 이름 붙였던 것들이 ‘퍼진 엉덩이’나 ‘늙은 영감탱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도 아닌 놈’이라고 부르고 애용했을 수도 있다. 이런 이름만 전해진다면, 당시 공방의 생활이나 활력, 삶에 더 밀접하게 다가갈 수 있을텐데, 남지를 않는다. 그러나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큼은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 작은 일화에 오래 머물기를. 지금도 공방에서는 그런 이름들로 도구를 부르고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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