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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센델/이양수/정의의 한계/멜론



정의의 한계-'옳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은 지난 25세기 동안 철학처럼 "참을 말한다."고 주장하지 않고도 진보해왔다.*

 


시작은 '무지의 장막'이다. 존 롤스의 무지의 장막(베일)은 개인들이 모두 동일한 상황에 있어 모든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간단하게 말해, 자신의 편견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으로 객관적인 공평무사의 관점에 도달한다는 것.

 

'원초적 입장'은 계약 당사자들을 모두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으로, 동시에 모든 정보를 한 순간에 지워버려 사회적 선택에 꼭 필요한 기본 정보만을 알게 하는 상태다. 이럴 때 비로소 '개인의 선택은 공정하다.' 고 여긴다. 무지의 장막은 롤스 '정의론'의 핵심이다.

원초적 입장을 조금 더 설명하자. 이것은 '도덕적인 관점'을 반영하기 때문에 어떤 희생도 용납하지 않는 정의 원칙이다. 때문에 소수의 희생을 인정하는 정의 원칙보다 우월한 지점을 확보한다. 그러나, 센델은 바로 이점에서만 공리주의 정의 원칙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비판한다. 이것이, <정의란 무엇인가>이 추격하는 부분이다. 이제, 정의란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겠다.

분배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 진정한 선택은 내용상 정의로움도 내포해야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공리주의 원칙은 사회 생산 극대화 할 수 있는 분배 원칙을 정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때문에 합리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합리적인 선택이란 무엇인가, 개인이 이해관계를 떨쳐버릴 때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선택의 동기와 선택의 결과, 선택의 영향을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어야 정의롭다고 주장한다때문에 사회 성장은 느리겠지만, 열악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삶을 개선하고 사회 성원이 될 기회를 부여 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롤스의 자유주의는,바로 도덕적 관점의 승리를 선언한다.


그러나 이상하지 않은가? 정교한 반박,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지 않더라도, 이곳에는 도덕적 관점의 승리만 있을 뿐, 인간이 없다.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배재한 선택을 과연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인간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지로 대표되는 마음을 거세한 로봇 아닐까? 인간 사회와 아주 닮았지만 절대 같아질 수 없는 컴퓨터, 가상의 게임 세계를 닮지 않았나. 나는 '무지의 장막'을 읽고 이게 무슨 소린가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무지의 장막은 인간에 대해 무지하다. 도덕적 승리와 함께 인간 이해에 대해 무지하다는 선언이다.

 


센델의 표적은 앞에서 말했듯이 정의 이론의 가정과 의무론적 윤리 이론의 철학적 전제에 있다. '정의>개인의 가치'라고 여기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도덕적 관점에서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선택의 중요성이라든지, 공동체의 필요성을 배제할 수 밖에 없다. 개인 선택이 '배제'된 것은 앞에서 알아보았듯 정의 이론이 개인을 위한 어떤 선택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선택은 일상적인 의미의 '선택'을 잃어버린다. 또한, 센델은 자기 이해를 충족하고 공동의 관심사를 키울 수 있는 '개인의 선택'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다고 지적한다. 즉, 구성적 공동체가 없다면 누구도 '자신의 능력과 선택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 되어야 하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센델은 자유주의 정치 철학은 바로 이점들을 배제한다고 지적한다. 삶 자체가 자기 정체성의 터전이라는 점,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려면 정치 영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공평무사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정의의 한계>는, 이러한 의무론적 자유주의가 빠질 수 밖에 없는 철학적 한계를 밝힌다.

 

그렇다면 센델의 대안은 어떤 것일까. 그는 공화주의를 대안으로 삼는다. 개인의 참여권이 보장되고, 공동체 공간을 활성화 하고, 더 나아지려고 하는 자아를 키우는 것이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데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자유주의가 상정하고 있는 '고립된 자아'에는 이런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한다.

 

무엇보다 '정치는 위험한 일'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센델이 믿음직스럽다. 정치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개입해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대답. 그러나, 센델은 얼마나 희망적인가. '예측불가능성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며 책을 닫는다. 수학이 정답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불확실한 가능성에 대한 확인의 길로 진보해 왔듯 철학 역시 '정답'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고심으로 진보한다. 센델의 <정의의 한계>, '인간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확인'으로, 철학의 진보 쪽으로 발을 디딘다.

 

 

 

 

 

*앙리 르페브르, 『리듬 분석』, 갈무리, 2013,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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