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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사회학/정태석/책읽는 수요일
<행복의 사회학>표지를 오래 살핀다. 행복과 사회학이 만나기까지의 과정, 급기야 사회학이 행복을 호출한 이유를 생각했다. 행복이 사회학과 만나서 '이야기'되었다. 상관없을 것 같은 이름이 만나 '제법 잘 어울'리는 것에 무엇을 느꼈나. 이제 행복은 어디에나 붙어 수식한다. 어쩌면 이렇게 해야 가질 수 있는 것이라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이런 이름들처럼. '행복한 결혼'이나 '행복의 아침' 혹은 '행복한 빵'. '행복'은 그대로도 소중한 것의 앞에 머물러 잘 어울린다.
행복이 아무 곳에서나 떠돌기 때문에 사회가 불행한 것일지 모른다. 이름 많이 불리는 것은 정작 자신이 머물고 싶은 자리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는지. 동의한다는 듯 <행복의 사회학>에서 총 다섯장으로 구분해 살피는 것은 행복 대신 자리를 차지한 것들의 이름이다. 자본의 레토릭과 권력이 숨기려는 숫자, 아이들의 교육, 인구의 변화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문제가 그렇다.
첫 장은 "가난에 대한 위험한 편견과 오해"다. 이 오해는 내가 다른이에게 갖거나, 다른이가 나에게 갖는 것 뿐 아니라 내 스스로 나에게 갖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가난의 이유, 불행의 원인을 게으름이라는 개인에게 '한정'하라는 이 누굴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 저자는'언제부터 우리 사회는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노동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지 않는 다고 비난하는 데 익숙하게 된 것일까? 24' 라고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 한정'에 대해 조금 더 들어가보자. 나를 개인의'하나'로 한정시키는 것에 대해 말이다. 우선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내 안에서 찾으려는 행위는 옳다. 내가 불행한 것이니 나를 먼저 살피는 것은 응당하다. 그러나 '나'의 범위를 개인인 '나'로 좁히는 것은 옳은가? 나의 원함과 상관없이 주어진 '세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것을 바라보는 태도의 전환이, 사회학이 도달해 달라고 부탁하는 지점은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확장하는 것. 큰 내가 되는 것.
세계는 나와 상관없는 외부가 아니라 '나를 이루는 일부'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감정'은 나와, 나를 제외한 모든 것과 감응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을 기억하자. 그래서 상상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은 나와 함께 살아지고 있다라는 생각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상관 없어보이는 소식(크게는 전쟁, 기아, 가까이는 부동산 대책, 지방선거, 간첩조작 사건 등등)은 모두 나를 향해 쏟아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모르는, 나와 멀리 있는 이들의 행복과 불행을 마치 '나'인 것처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비로소, 불행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태도다. 그것이 나를 살아가는 태도다.
그러나 나는 나를 살아가고 있는가, 신문의 사회면은 묻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면 그 말에는 읽고 싶지 않은 괄호( )가 있다는 걸 안다. 괄호는 삶의 그림자인 죽음이 머무는 곳이다.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강요된 죽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부자연스러운 죽음은 부자연스러운 삶을 나타낸다. 나는 '세모녀의 사건'과 보이지 않는 '자살'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죽음을 선택하므로써 삶의 존엄을 지켰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 죽음들은 살아있는 이들의 '비참'을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있는 위치를 그들처럼 살짝 바꾸기만 한다면 역시 존엄을 지키지 못하는 삶을 살 것이라는 고발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불가피하게 내가 미쳐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남의 존엄을 깎아야 하고, 나의 존엄 또한 무너트리려고 애쓴 것은 아니었던 구조에 의해 갈아먹히고 있다. '나를 살아가는 태도'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까지 포함한다. 이것을 자연스러운 순환으로 지켜내는 것. 마치 나인 것 같은 이들이, 나의 위치를 살짝 바꾸기만 하면 모두 그들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 조금 더 거대한 나로 살아가는 것, 다시말해 '사회학적인 나'로 살아가는 일이 필요하다. 거대한 나의 다른 이름에 귀를 기울인다. <행복의 사회학>을 읽는것은 내가 잘 모르고 있던, 수 많은 나의 다른 이름. 그들이 머무는 현주소를 알게 되는 일이 될 것이다.
+ 알기 쉽게 사회문제를 살피고 정리할 수 있다. 인포그래픽이 매장 적절히 쓰여 각종 통계 또한 가깝게 다가온다. 새로운 의미의 '실용서'라고 생각한다. 신문을 매일 읽는 것으로 정리하는 것은 무리, 주간지를 읽는 이라도 매년 구독하지 않았다면 무리. 한 권으로 간단하게 문제를 정리할 수 있다. 알고는 싶은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어, 라는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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