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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시대의 창/2014
마음의 진화를 위하여-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옆 자리에 책 몇 권이 쌓여 있었다. 몇 시간째 사람은 오지 않고 책만 덩그러니 있다. 책등이 자꾸 시야에 걸렸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슬쩍 눈길을 내 이름을 읽으니 제목이 '이렇게 살 것인가*'였다. 불현듯 다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목이 먼저 말랐던 것 같았지만 둘의 선후는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자리를 떠 책을 피했다. '이렇게'라는 미지의 지칭에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정의가 있다는 듯 또박또박했다. 그리고 나도 '이렇게'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듯 했고 '이렇게'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말하지 않았으나 이미 제목으로 전후사정을 다 들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책을 읽지 않았는데 이미 '이렇게' 살고 있는 듯 했다. 그걸 '알고' 있는 책은 나에게 물어오는 것이다. '(계속)이렇게 살 건가' 그러나 나의 '이렇게'가 무엇이 잘못이길래 질책하는(받는) 것인가? '이렇게'는 사회가 말하는 '기준'을 벗어난 나의 삶을 책망하는 듯 했다. 나의 굼뜨는 생활. 눈매 세심한 이는 불현듯 찾아온 목마름과 그곳에 숨어든 책과 나의 알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책의 반경 50cm에 있다가 250m밖으로 나갔다.
다시 자리에 돌아오니 책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책 보는 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없어서 빈 자리에 책들이 아까보다 더 잘 보였고, 제목도 더 잘 들어왔다. 부아가 나서 책 등을 다시 읽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방금 마시고 와서 목마르다고도 할 수 없었다. 대신 침을 삼켰다. '어떻게'라는 말은 엄청난 힘으로 물었다. 너는 어떻게 살고 싶니? 온화하게 말이다. 턱을 괴었다. 어떻게 라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와 '어떻게'는 차이는 없다고 해도 좋을만큼 다름이 표시 나지 않았다. 아주 작은 삐침 하나로 마음을 내고 있었다. 나의 어떻게를 내내 생각했다. '어떻게'라는 물음은 아직 공유되지 않은 것 처럼 보였다. 저마다 '어떻게'가 다를 수 있다는 것 같았다. 너의 어떻게와 나의 어떻게는 다르다. 그러나 '살 것이다'이전에 물음표가 오는 것은 꽤 좋아보였다. 나는 내가 사는 것을 마음먹기 전에, 아니 먹으면서도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서 사는 것이 오기 전에 내일을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것이 없이 산다는 것은 허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라는 허전함을 계속 생각해 보았다. 돌아와 생각하니 '어떻게'는 '윤리'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윤리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와 당신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윤리와 당신이 할 수 있는 윤리가 다르기 때문에. 윤리는 대부분 사람들이 '좋다'고 또는 '옳다' 하는 것이지만, 그 좋고 옳은 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도 좋은 것이었다. 재화와 전혀 상관 없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음의 눈을 감으면 감을 수록 나의 손해를 덜 보는 것에 가깝다. 마음과 관련된 것들은 조금 불편한 시간을 지나가면 된다. 그 시간을 지나서 다른 시간에 살고 있으면 지워진다. 나만 알 뿐이다.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는, 내가 착각해 읽었던 이렇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중간지점에 있는 물음이었다. 온화하되, 꼼짝할 수 없게 묻는다. 시대가 공감하는 공동의 선이 있다. 지금은 재화가 대표한다. 모두가 가까워지려고 하지만 소수만이 그곳에 도달한다. 제로섬, 누군가 선을 차지하면 누군가는 잃을 수 밖에 없다. 그 다음의 몫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 재화는 끝을 알고 욕심은 끝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선은 옳은가? 묻는다.
그러나 모두가 지향하는 삶, 공동의 선이 재화에서 윤리적인 삶으로 바뀐다면 어떤일이 일어날까. 이타적 삶은 으레 손해를 동반하는 듯 하지만 [이타적 행동은 쉽게 윤리적 행동으로 간주되지만, 자신의 이익을 고려한 행동이 윤리적 행동과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251]는 피터 싱어의 체험을 들으면서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윤리적 행동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남을 도울 때,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할 때 들어왔던 마음의 달콤함은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그 예다. 인류의 공동의 선이 '행복'이라면 그것은 가치를 잴 수 없어야 하는 것이다. 불편한 시간을 눈감고 지나쳐 나를 벗어난 나의 '것'들이 풍요로워지는 삶이 아니라, 내가 풍요로운 삶을 꿈꿔야 하지 않을까. 그 삶을 잴 수 있는 미터는 이제껏 발견되지 않았다. 끝을 모르는 풍요가 있다면 바로 그런 삶일 것이다. 피터 싱어는, 인류의 진화를 꿈꾸고 있다. 인류가 도달해야 할 지점이 있다면 '영생의 삶'이나 '우주 진출'이 아니라 바로 '마음의 진화'라고 말이다.
* 없는 책
**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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