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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피크민 엽서

_봄밤 2025. 2. 21. 13:55

최근 A와 연락이 뜸하게 되었다. 동시에 B가 연락을 거의 하지 않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B는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이다. 스타일이 좋고, 여러가지 좋은 곳을 잘 알며, 삶을 관조하는 태도가 좋다. 내가 연락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나에게 연락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동생에 따르면, A는 왜 오래 전에 멀어지지 않았는지 의아해 하는 관계였다. 

 

세상 일은 좋음과 나쁨으로 나뉜다. 나쁨은 무엇인가? 좋지 않은 것이다. 좋음은? 나쁘지 않은 것이고. 예전에 그는 내가 '나쁘지 않은 사람 같았'다고 이야기 했다. 그게 '좋은 사람 같았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을까? 나는 두 개가 전혀 다른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최근에 알게 된 C는 전혀 흥미롭지 않았으나 그가 가진 '운동'에 대한 열망이 궁금했다. 직장과 별개로 사회 운동을 조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저번 달 모임을 내가 또 빠지고 말자, 그는 급기야 밥을 먹자고 했다. 거절할 힘은 없었고 그럼 밥을 사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건 그가 너무나 어렸기 때문인데, 당연히 나이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다가 구체적으로 나이를 알게 되어, 이렇게 크게 차이나는 나이를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같은 직장인' 인데요. 라고 입을 뗐지만, 열살이나 어린 친구와 밥을 먹을 때는 당연히 사야하는 것이 도리이다.

 

그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는데, 대화를 해나가는 능력이 있었다. '그럼... 어떤 종류의 책을 제일 좋아하세요?' 나는 이제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시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와, 저는 시를 읽어본 적이 없어요.' 라고 말하며, 어느 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을 묻는 데까지 도착해, 나는 십 년도 더 전에 나온 그의 가장 최근 시집을 소개하고 있었다.

 

'가장 최근의 시집이 2015년에 나왔네요. 10년이 지났네. 이제 새로운 시집이 나올 때가 됐는데' 하며 나는 지금보다 젊었을 적 홍대에서 열린 시인의 북콘서트에 갔던 것을 생각해냈다. 그는 구태여 서점 앱을 키고 그 시집을 검색하고 저자 소개를 유심히 읽기 시작했다. '김... 사, 인 이름이 특이해요.'  

 

그리고 이제는 말할 때가되어, 앞으로 모임에 나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이유는... 이유를 말할 필요가 있나? 바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솔직하게는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지만 재미는 사실 있는데 내가 못찾은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모임을 계속 꾸릴 것이었다. 다른 사람을 또 모아서 이야기를 해나갈 것이다. 운동을 말이다. 그는 아쉽지만 이렇게 종종 밥을 먹자고 했다. 미래의 일은 미래에 있다. 할말은 여전히 별로 없겠지만 그러자고 했다. 그때는 사무국장은 무슨 일을 하는가? 요즘 여성 운동의 안건은 무엇인가? 등을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터놓았다. 어떻게 그 부스에 가게 되었는데, 그날 날씨가 어땠는지(만남에는 날씨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지. 그는 그 사람들과 인생 대부분을 함께 했다. 산에도 함께가고, 명절도 같이 보내고, 주말은 물론이고 차례차례 있는 회의와 차례 없는 회의까지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깨닫는 것이 있어, '아, 그럼 그분들은 동지 같겠네요' 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동지같죠.' '아니 동지죠.' 라고 대답했다.

 

어느 새 나는 인생에서 동지를 만난 사람과 대화하고 있었다. 동지를 만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가 멋져 보였다. 부러운 마음이 일었다. 'C님은 고민이 없겠네요. 해야할 일이 분명히 있고 계속 해나갈테니까. 함께할 사람들도 있고요.' 그러자 그는 웃으며 '그런가요?' 되물었다. 그는 역으로 가고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동지.. 동지... 동지가 있는 건 부러운 일이다. 하고 싶은 것이 같아야 동지가 생기는구나. 하나마나한 생각을 하며, 그 동안 모은 피크민 엽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제 북콘서트 같은 것은 가지 않는다. 예전에 그곳에 갈 적에, 야트마한 언덕을 오르며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웠는지를 생각했다. 그 언덕 근처에 편의점이 있었는데.

 

그 시집을 함께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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