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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에 도착했을 때 햇빛이 좋았다. 철야했던 사람들이 쉬러간 자리를 채우기 위해 갔다. 이 사람들은 밤을 새는 고생을 했을텐데 이렇게 날씨가 좋은 시간에 도착하다니 롱패딩이 무색했다. 간밤의 잠자리 흔적이 보였다. 여기저기 캠핑 용품이 보였다. 무대의 꽤 뒤편에 앉았는데, 이제 곧 행진을 할테니 반대 방향으로 서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말하자면 이제 뒷자리가 제일 앞자리가 되는 것이었다. 볼보 빌딩까지 걸어간다고 했다. 노동조합 분들과 깃발이 선두에 섰다. 촘촘히 서니 나도 어느새 앞단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 경찰의 협박 스피커가 잘 들리는 자리였다. 이것은 불법 시위이고,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으니 해산하라는 소리였다. 누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지, 이곳에서 시위하는 시민은 시민이 아닌 것인지 어이가 없는 동시에 심리가 위축되었다. 시위 차량 위에서 노조와 시민들의 이동을 독려하고 행사를 운영하는 민주노총 사무총장(여성)의 뒷춤에는 큰 갈고리가 시위 차량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지지 않았다.
그가 목소리를 낼 때마다 그게 빛나고 출렁였다. 그건 어떤 의지였다. 경찰의 겁박이 들릴 때마다 그는 더 크게 말했다. 잡소리 치우십시오. 저는 민주노총 사무총장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말했다. 두 명이 연행되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명이 연행된 이후 앞단에서 몇몇의 머리가 길고 앳된 여자들이 뒤로 갔다. 겁을 먹은 표정, 그들은 10대였다. 경찰의 겁박과 민주노총과 시민의 행렬에 가장 앞줄에 있던 것은 바로 10대 여성들이었다. 시위대가 경찰에게 한 발자국을 요구하며 대치가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몇몇은 돌아 가기도 했지만 가장 앞줄의 깃발은 고요히 그 자리를 지켰다. 대오를 유지하라는 말이 위안이 되었다. 대오를 유지하십시오. 햇빛이 중천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밝은데 사람을 잡아가는구나. 누군가가 도와주러 오기를 기다렸다.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한 사람 한 사람, 그냥 나 같은 사람이었다. 어떤 히어로가 이 상황을 정리할 수 없고, 한 명 한 명이 모여 산을 이루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걸 느꼈다.
민주노총이 길을 열었던 것만 기억해서 길을 열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 적잖이 충격이었다. 길을 연다고 늘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앞단에서는 연행이 된다니. 연행이라니? 한 발자국을 요구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는지 몰랐다.
그러던 중 누가봐도 평범한 시민인 앳된 얼굴의 여자가 뒤를 돌아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노조 분이신가요? 혼자 온 것처럼 보였는데, 노동조합 분들 사이에 자기만 아무개인 사람일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시민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다행이라는 얼굴로 다시 오른 팔을 들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옆에서, 앞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세게 들리는 것이 용기가 되었다. 깃발을 들고 있는 장년층, 노동조합 분들을 제외한 시민 대부분은 10대 20대 여자였다. 나보다 훨씬 어린 얼굴들, 얼마 되지 않은 얼굴들. 그리고 더 이상 이보다 어른이 아닐 수 없는 내 나이를 떠올렸다.
옆에서 마스크도 없이 소리 지르던 여자가 생각난다. 들리지 않으면 불안해지니까 우리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더 외로워진다. 경찰들의 목소리를 무마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더 목소리를 냈다. 곧 대치를 풀고 다시 앉아서 집회를 계속했다. 조합원들의 연행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연단에서 들려왔다. 그러는 사이에도 경찰은 해산하라고 스피커로 방송했다. 100건이 넘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100건이라는 숫자에 코웃음이 나면서도 그들이 셈하는 숫자에 대해 생각했다. 그 숫자가 문제가 된다면 이 곳에 서 있는 시민의 숫자는 세보았나? 어떠 숫자는 없는 것처럼 무시되고 숫자로 셈해지지 않는다.
다시 노래와 발언이 진행되었다. 음악과 노래는 다시 기운을 북돋았다. 간단한 율동을 같이 하자고 했는데, 그 율동이 간단하고 귀여웠다. 오래전부터 있던 것인지, 앞에 계신 중장년층 부부가 그것을 잘 따라했다. 왠지 눈물이 났다. 간단한 가삿말과, 쉬운 율동을 앉아서 따라하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광장의 운동, 외로움 같은 걸 생각해 보았다.
집에 와서 부모님에게 시위 간 이야기를 해드렸다. 무척 좋아하셨다. 광장이 있어도, 시위가 늘 열려도, 그곳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사람의 발언을 함께 들을 수 있다면 더 좋을텐데. 여러 사람의 발언을 듣는 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다. 우리가 어떤 인생에 대해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안에 대해서 다 같이 듣기로 했다는 것, 귀가 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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