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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술 물건은 모두 아슬아슬하다. 그 구조가 조금만 빗나가도 평범한 쓰레기, 평범한 장식, 평범한 예술 등 평범하고 당연한 세계에 속하게 되는데 아주 작은 부분이 이유가 되어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초예술로 존재하게 된다. (...)

 

즉 초예술은 당연한 세계(생산제 사회)에는 속하지 못하는 물건이기에 아무래도 그 발생과 동시에 폐기될 운명에 처한다. 

이 버스 정류장 건에서 물건의 아슬아슬함은 부동산적 상태의 아슬아슬함이기도 하다. 89p

 

옛날에는 오른쪽 전신주를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른쪽 전신주가 6분의 1만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하부에는 튼튼하게 보강까지 되어 있고, 상부에는 벚나무 가지를 자른 뒤 물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양철 뚜껑까지 덮여 있습니다. 어쩌면 전신주를 정확하게 6분의 1로 잘라 나무를 살리려고 했던 건 아닐까요? 어느 날 양철 뚜껑을 뚫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전신주의 새싹이 돋아나 6분의 1이 6분의 2가 되고 6분의 5가 되어 마지막에는 2와 6분의 1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이 6분의 1 전신주에는 왠지 뿌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237p

 

바보와 종이 한 장 차이의 모험, 아니 이 경우는 모험도 아니다. 바보와 종이 한 장 차이의 뭐랄까, 바보와 종이 한 장 차이의 인간........

 

...이 물건은 그 존재가 구차하지 않고 명확하다. 그 부분이 훌륭하다. 먼저 기괴한 점이 밑동의 보강 부분이다. (...)문제는 귀두부 양철이다. 말이 너무 거칠었다. 예의를 차려 말하면 꼭대기에 씌운 고무. 아니, 또 틀렸다. 꼭대기에 씌운 고무가 아니라 양철 부분. 여기가 중요하다. 전신주를 이 길이에 맞춰 절단했다는 점에서 이미 토머슨의 맹아다. (...) 도대체 이런 물건을 보존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 이유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토머슨의 방망이는 스트라이크 볼에서 멀리 떨어져 확실하게 허공을 가로지른다 241p

 

 

<초예술 토머슨> 아카세가와 겐페이 지음 서하나 옮김 안그라픽스

 

게리 토머슨은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였는데 높은 연봉으로 일본 야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해 자이언츠 소속 선수가 되었다. 그런데 스윙은 잘해도 공이 좀처럼 맞지 않아 헛방망이질만 하더니 결국 야구에서 쓸모가 없어져 벤치에만 들러 붙어 있었다. 그 토머슨을 한자로 쓰자 '초예술'이 되었고, 그 두 말의 위상을 비틀자 그곳에 도시의 유령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10p

 

 

초예술과 토머슨. 어처구니 없는 명명의 시작인데 책도 그러하다. 이책은 일본에서 1987년에 출간된 책을 번역한 것이다. 역시 일본, 답게 초예술(증축 개축 보수 등을 통해 옛것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고 현재에 솟아 어떤 기능은 하지 않고 딱히 예술처럼 아름답지 않지만 기이한 느낌을 주는 부동산) 자료 수집을 하고 분류하고 나누고 있다. 

 

시종 서술이 재미있고, 자신도 재미있어 어쩔줄 모르는 모양이고, 희희덕 거리고, 그게 읽는 사람도 재미있다. 무엇이 예술인가? 라는 물음을 약간 비틀어서 주변을 다시 살피고 감각하게 만드는 책. 

 

<스즈메의 문단속>의 모티프가 일본에는 생각보다 흔하게 있었구나 싶게 만든다. 문의 기능을 하지 않지만 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초예술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거리에서 은은한 예술로서 기능을 한다. 

 

 

책 디자인이 무척 좋다. 디자인 요소가 읽기를 방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귀여운 각주 표기, 사진 번호 표기 양식이 책등부터 통일감을 갖고 있다. 제본이 특이해 쫙 벌어지다 못해 책표지와 책등이 닿을 수도 있다.  맨 뒷표지에는 왠 꽃 사진이 있는데(개망초라는 이름이 떠오르는) 그것은 안그라픽스 사옥에서 발견한 초예술이었다. 즐거워라. 이 책을 만드는 사람의 즐거움이 여기까지 전해진다. 책등에는 초예술 1 토머슨이라고 되어 있는데 2도 있다는 뜻인가? 연속성을 찾아볼 수 없게, 있긴 하다. 제목은 <노상관찰학 입문>. 그런데 이 책에는 2라고 표기 되어 있어 어처구니없는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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