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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정상 진눈깨비

_봄밤 2022. 1. 27. 23:17

 인왕산, 무악재 역에서 무악재 구름다리를 통해 가면 금방이라는 리뷰를 보았다. 왕복 1시간에 정상을 갈 수 있다고 하는데, 다녀온 결과 그것은 사실이었지만 매우 밀도가 높은 1시간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무악재 역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육교가 있고 6~7분 걸으면 구름다리를 올라도 인왕산에 갈 수 있다. 육교는 구름다리와 연결되어 있지는 않았다. 육교를 올라간 곳은 이미 산의 일부였다. 그 경사에 도로를 닦아놨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보통의 도로가 아닌, 소방 도로였다. 산과 연결된 소방도로. 도로를 닦은 이들도 그 수고를 잊을 수 없었는지 경사진 벽에 소방도로 준공 표지를 새겨 놓았다. 1988년 4월 20일이었다. 날짜는- 틀릴 수도 있는데 년도와 월은 확실하다. 30년도 전에 이 도로를 닦아 놓았구나. 이제 인왕산 등산의 시작이었다. 그때 이미 숨이 너무 찼는데, 조금 더 올라가니 산 위에 농구 코트가 보였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파트는 레고 블럭만하고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다. 세상이 아래로 보이기 시작했다. 

 

 인왕산 올라가는 길은 폭이 매우 좁고 계단이 많고 이정표가 많지 않았다. 이게 길이 맞나 의구심이 들 때쯤 이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표지가 나왔고, 그것은 꼭 필요한 곳에만 존재했다. 즉 갈림길이 있을 때만 이정표가 있었다.

 

 힘들어서 멈추면 흘러내리는 바위가 보였다. 그것은 매끄러웠고 무서웠다. 계곡이 있는지 물이 내려오는 길 그대로 얼어 있었다. 이렇게 길게 이어진 얼음은 처음본다. 산의 일부인 듯, 희고 깨끗한 바위 같았다. 

 올라갈수록 이곳은 인간의 구역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확실하게 전해졌다. 계속 올라가다가 왠 사람을 만났다. 혼자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반가우면서도 놀랬다. 그분에게 정상까지 얼마나 걸리는 지 여쭤보니 놀랍게도 15분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15분만 가면 된다고? 물론 시작점에서 600m 조금 더 넘는 거리였지만 이렇게 빨리 정상에 갈 수 있다니 힘이 났다. 하지만 산에서의 시간은 늘 더 짧게 왜곡되어 있다. 

 

 곧 성곽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가 보아도 요새의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작품. 안심하고 올라갔다. 성곽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심하라는 표지가 있었는데, 말 그대로 조심하면 되는 줄 알았지 인왕상 정상으로 가는 성곽길 주변에는 줄이 없다. 경사진 곳을 1/3쯤 올라갔을까? 이곳은 걷는 길이 아닌걸까? 다시 내려갈까 뒤를 돌아보니 경사지고 폭이 좁은 계단이 어지러웠다.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올라갈 자신은 있었을까? 그때 계단에 누가 쏟아버린 유자차가 보였다. 누군가 여기까지 왔구나. 그럼 나도 갈수 있다.

 성곽길로 올라가니 정상은 커녕 그냥 낭떨어지였다. 정상은 이 돌 낭떨어지 위에 있다... 이곳은 올라올 수는 있어도 내려갈 수는 없는 경사였다. 정신이 황망했다. 이 돌무지를 따라 걸어가면 뭐가 나올까? 막다른 곳이었고 폭이 50cm도 되지 않았다. 그 곳에 귤껍질이 있었다. 누군가 여기를 올라오긴 했구나... 경치를 보다 귤을 까먹었나본데 그가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단서가 없었다. 무서워하던 중 계단으로 억지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딱히 길은 아니었는데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이었다. 다행히 철제 계단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길로는 가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어지는 돌계단. 정강이를 초과한 돌계단을 기어 올라갔고, 아마 기어 내려와야 할 것이었다. 그래도 여긴 밧줄이 있잖아. 나는 방금 전 정말로 죽을 뻔했다. 

 정상에 도착했다. 겁먹은 땀이 나왔다. 긴장이 풀리니 더웠다. 올라가면서 비가 조금씩 흩뿌리기 시작했는데 정상에는 진눈깨비로 변했다. 산은 정말 멋진 곳이야. 가여운 인간을 염두하는 일은 조금도 없이 비를 진눈깨비로 바꾸고 또 그 흰색이 나무에 내리는 경치도 보여준다. 외투를 벗고 본 경치는 정말로 멋졌다. 왜 그랬는지 처음 오는 산에 오면서 물도 들고오지 않았다. 그러니 정상에 와서도 물이 없었으며 먹을 것은 당연히 없었다. 초코파이와 요구르트, 그리고 김밥과 물을 먹던 젊은이들이 부러웠다. 다음에 나도 정상에서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며 가방을 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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