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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것이라고 우길 만한 단어 두 개, '외로움'과 '도시'를 가져가서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장소를 만들었다. 읽고나면 올리비아 랭이 만든 그곳 만을 비로소 '외로운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우선은 그녀의 장소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은데, 읽는 사이 내가 뉴욕의 어떤 집에 가 있고, 내 발음이 어눌하여 알듯 말듯한 조소를 겪고, 내 곁에는 아무도 없고, 하루 종일 켜져있는 맥북만이 구원하는 올리비아 랭의 개인적인 장소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읽기는 그것 만으로도 고독해진다. 그녀는 자신이 느낀 외로움 속에서 다시금 이해했던 예술가들의 지도를 펼쳐 놓는다. 호퍼와 워홀, 솔라나스, 골딘, 다거, 비비안 마이어, 워라노위츠 등의 생애가 걸린 골목은 저마다 처참하다.
유명세와 상관없이 어떤 부분에서 '제대로' 이해 받지 못한 이들의 장소에 가서 면면을 훑는 그녀의 작업은 우리가 고독하게 살아감에 있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안내를 전한다. '고독은 하나의 도시다.' 내가 받아들인 문장은 사실 여기 까지다. 이후의 문장이 책을 잘 닫는 듯 하지만 병들고, 죽었는데 피가 아직도 마르지 않는 난장판이 된 세계를 '하하호호' 끝낸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서로 연대하는 것, 깨어 있고 열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아니라면 별로 옮길만한 대목이 없다.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니라, 문단에 완전히 취해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쉽게 위안을 주지 않는다. 내가 가진 절망보다 조금 더 절망해야 하기 때문에. 내 것 같은 아주 쉬운 단어의 제목이지만, 저 단어들은 한번도 제대로 내 것인 적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된다. 마침내는 내가 가질 수 있을만한 단어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리베카 솔닛에 비견되는 글쓰기'라고 평해진다고. 리베카 솔닛의 글은 일상적인 장소에 갑자기 생긴 씽크홀처럼 우리를 빠뜨린다. 그러니까 설거지를 하다가, 엄마가 보내주신 음식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리베카 솔닛의 씽크홀은 대낮의 도로에 있다. 누구나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올리비아 랭의 글쓰기는 '예술'의 일부에 아팠던 사람에게만 아주 깊은 수렁을 열어 놓는 것 같다. 그러나 제목만 본다면 <멀고도 가까운>이 <외로운 도시>보다 더 다가가기 어렵다. 대낮의 씽크홀처럼 보였지만, <외로운 도시>의 수렁에 제대로 걸려들기는 쉽지 않다.
비슷한 책으로 양효실의 <불구의 삶, 사랑의 말>이 있다. 이 제목은 올리비아 랭의 책과도 닿는다. 그러나 제목은 훨씬 어렵네. <사랑의 말>정도로 감추었으면 더 알려졌을까 싶은 아쉬운 책. 앞선 책이 미술을 다룬다면 이 책은 언어-특히 국내의 작가를 다룬다. 김언희, 최승자 등의 시가 평소에 불편했다고 여겼던 이들을 다른 시선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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