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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사랑일까-여행이 끝나고 나면

 

<우리도 사랑일까>에는 결혼 5년 차, 마고의 감정이 아주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남편 루,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대니얼과의 감정의 선들도 따라 그릴 수도 없을 만큼 복잡하고 날카롭고 아름답다. 그녀는 업무차 떠난 여행지에서 대니얼과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되고, 특별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그가 이웃에 산다는 걸 알게 되고는 일상이 좀처럼 평온해 지질 않는다.


그녀가 크게 흔들린 이유는, 아주 사소하고 짧은 시간에 자신의 일생을 관통하는 불안을 대니얼이 알아봤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그녀 자신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남편은 당연히 몰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니얼은 몇 가지의 단서만으로 그녀에게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이는 예술가로서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그의 태도에게서도 비롯되었겠지만, 그럼에도 그녀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굳이 이어지지 않았을 이야기들이다. 문제는, 그녀를 왜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녀가 글을 쓰기 때문에? 그녀가 자신의 작품과,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모두 아니다. 그는 이리저리 떠돌며 인력거를 몰아 생활을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는데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은 없다. 자기가 보려고 그리고, 실제로 자기만 본다. 이점은 순전히 영화 전개를 위한 희생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대니얼의 말, 대사, 행동에 대한 투자는 굉장하지만, 대니얼이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고심은 거의 없다.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면 이렇다. 시간이 남아도는 직업을 주자, 딱히 돈을 많이 모을 필요는 없다, 그녀와 아침, 점심, 저녁 어느 때고 마주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적 감각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자.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독보적인 남자캐릭터가 탄생했다. 


또한 그녀 스스로를 대충 덮어둔 채 살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대니얼에게 들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편 루는 닭요리 책을 집필하기 때문에 집에서는 늘 닭 요리가 평온하고 맛있게 퍼진다. 대니얼과의 대화는 여행처럼, 이제껏 그녀가 가보지 못한 곳으로-그런 곳이 있었는지도 모르는-그녀를 데려다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루는 그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5년이나 살았으니까. 부부이니까. 매일매일 생활을 함께 하는데 모르는 게 어디 있어. 라는 말들. 그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녀 스스로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에 대해서 조차 알지 못한다. 몰라서가 아니라 안다고 생각하는 점, 이점이 치명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루는 그녀가 환승할 때 휠체어를 타고, 기내에서 우유를 먹으며, 기괴한 책을 읽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의 불안은 비행기를 타는 특별한 순간에만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일상을 늘 여행처럼 살 순 없다는 점을 그녀도 놓친다. 


루에게 자신을 고백하고 나서 그가 매일매일 샤워 중인 그녀를 위해 준비한 장난을 보여줄 때 가슴이 아팠다. 나중에 늙어서 장난칠 수 없게 될 때, 찬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는 것. 루가 준비한 이야기는 그것 밖에 없었고, 그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야 완성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녀가 듣고 싶었던 건 여행처럼 일상을 벗어나는 이야기였다는 것도.


그래서 대니얼과 함께한 그녀가 행복했을까? 밉게도 이게 가장 궁금하겠지. 그러나 '사랑'하기까지의 용기와 모든 감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생략한 채 행복만을 묻는 것은 치사하다고 생각한다. 자자, 사랑이 행복과 같은 말이라는 잘못된 생각은 언제부터였는지? 그녀는 자신이 가보고 싶은 곳을 갔고, 그게 사랑이었지만, 행복이라는 결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여행과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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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이유를 물어보자.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에는 나의 결핍과 원함이 있다. '당신과의 사랑으로 하여금, 나의 결핍과 원함을 채웁니다.'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은 당연히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사랑에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자들이 있는데, 그런 이들과는 상대도 하지 말자. 자신이 어떤 얼굴로 돌아다니는지 궁금해 해본적도 없는 이들이다. 그러나


네가 아름다워서, 잘생겨서, 돈이 많아서, 라는 말로 사랑의 이유를 닫아서는 안된다. 이들 말에는 너에 대한 설명이 있을 뿐, 그게 나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거나, 알려고 하지 않을 때 이런 일이 생긴다. 앞에서 사랑에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앞선 이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 번 더 생각하자. 그 사랑은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이끌어주는가. 네 아름다움이 나의 일상을 구원하고, 너의 잘생김이 나의 막막한 오늘을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만들고, 너의 돈이 많음이 나의 미래를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 주어서,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고, 좋아서 죽을 것 같은 미친 상태도 아니고, 단지 너의 어떠함 만으로 목적을 삼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현재 나의 어떠함 그리고 나의 원함, 거기에 (나의) 미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오늘의 사랑에, 내일을 더할 수 있게 된다. 


::: 소리 지르면서 봤다. 사랑의 순간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영화. 그러나 이 영화의 성취도 분명하다.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흔들리는 감정은 눈이 부시도록 생생하지만 그 이유에 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여자의 매력이 무엇인가와, 그 남자는 왜 이 여자를 사랑하는 가, 이 여자가 그 사랑을 이루면서 도달하고 싶은 장소는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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