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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성학이나 노년학이 '늙음'이 '여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포착하지 못했다는 확신에서 시작되었다.
인종이라는 개념이 '인종적 우월성'이라는 관념과 얽히고설켜 있듯 '늙음'에는 의존과 상실이 함축되어 있다. 이 말은 상대적으로 누가 힘이 더 약한지, 누가 더 존중받지 못하는지를 전한다.
"늙는다는 것 자체가 권력의 상실이다."
'늙음'은 우리 몸 안의 변화가 아니라 그 변화에 부여하는 우리의 의미에 의해 정의된다. 43p
노화 과정이 화학 약물에 의존하게 되는 원인 중에는 주류 의사들이 총체적 인간을 다루는 치유자로 단련되는 과정을 밟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이론적으로 의사는 환자에 따라 우선 약물 없는 치료와 약물 치료 중 양자택일할 수 있지만, 대개는 훨씬 옹색한 선택지를 고른다. 그래서 어느 약을 처방할 것인지부터 고민한다. 154p
그는 무엇이 정상적인 뼈인지 묻는다. "쉽게 부서지기 쉬운 현대인의 뼈인가, 아니면 대형 쇠망치보다 수명이 더 긴 조상의 것인가?" 173p
며느리가 아들보다, 여자 형제가 남자 형제보다 돌봄을 제공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쓰이는 '가족 돌봄'은 여성의 일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노인 여성의 생산성은 대체로 간과되지만, 노인 돌봄의 가치는 연간 약 4천억 달러로 추정된다. 더구나 불경기가 시작되면서 돌봐야 할 대상이 있는 직장인의 47퍼센트가 돌봄을 위해 자기 저축의 전부 혹은 대부분을 썼다. 연로한 가족을 돌보는 것은 '정서적 구속'이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270p
남성은 한 가지 일만 하면 되지만, 많은 여성이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 하나는 임금 노동이고, 다른 하나는 무임금 노동이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에게 종속되는 한 "여성은 거센 경제적 압력에 밀려 무상 돌봄 노동을 떠맡는다." 273p
일반적인 용어 '부담'은 무엇이 문제인지 힌트를 주지 않는다. 내가 남에게 짐이구나 싶은 심정은, 내 상황으로 나를 돌보는 자가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느낌과는 다르다. '돌봄의 부담'이라는 말의 무분별한 사용은 노인을 객체화하고, 고령 인구 증가에 대한 경고음을 한층 날카롭게 만든다. ...돌봄이 부담으로 정의된다면 그것의 "구조적이고 물화적인 근원"이 끝내 보이지 않게 된다. 돌봄은 미국에 정착한 많은 중국인이나 필리핀인, 베트남인에게 의무나 부담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은 보통 "내가 어리고 아무 힘이 없을 때 부모가 나를 볼봐주셨다. 이제는 부모가 늙으셨으니 내 차례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280p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연령차별의 주요 출발점이다. 호스피스를 충분히 이용하지 않는 것은 미국에서 죽음을 강렬하게 부인한다는 증거다. 우리 사회를 대충 싸잡아 "젊음을 숭상하는 사회"라고 부른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젊은이에 의해, 젊은이를 위해 편성된다.
영국의 노년학자 알렉스 컴퍼트Alex Cmfort는 연령차별주의를 "사람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니고, 똑같은 사람도 아니고, 여러 해 동안 살았다는 것 때문에 열등하고 별난 사람이 되는"신념이라고 정의했다. 297p
나이를 기반으로 하는 차별은 인종과 성을 기반으로 하는 차별만큼이나 불합리하고 독단적이며 부당하다.
민담은 노인, 특히 노인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의 보고다. 동화를 보면, 노인 여성은 처음에는 친절을 베풀지만, 결국 마녀임이 들통난다. ...왜 노인 여성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까? 학자들은 그들이 사산아, 흉작, 남성의 성적 불능 등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비난받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 지식을 습득할 시간이 많은 노인 여성이 가장 위협적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충분히 그럴듯하다. 마녀 할망구는 "스스로 힘을 비축하는" 여성이었다. 300~302p
특정한 단어와 구절, 말하는 방식에서도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읽을 수 있다. 손자들을 돌보니 "계속 젊은 상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선적인 오류를 범한다. 격려한답시고 노인 여성에게 젊다고 말하는 것은 늙는 것이 나쁘다는 생각을 더욱 부추기는 꼴이다.
잘 늙은 남성의 얼굴은 성숙과 품격, 관록을 드러내는 것으로 간주된다. 반면, 여성의 얼굴은 같은 상태를 유지해야 제대로 평가받는다. 여성의 얼굴은 가면이다. 318
늙은 몸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 노화의 수치심은 영구적으로 자리를 굳힌다. 젊은 여성의 벗은 몸은 일요일의 <뉴욕타임스 매거진>을 위시해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어디서 늙은 여성의 벗은 몸을 볼 수 있는가? 이것은 미개척 영역이다. 늙은 여성의 벗은 몸이 없기 때문에 모든 연령의 여성은 늙은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늙은 여성의 몸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322p
권장된 분주함은 사회적 통제의 기능을 은밀히 조종하는 숨은 규칙이다. 한 가지 일이나 약속을 끝내고 서둘러 그다음 업무로 바쁘게 움직이는 노인은 그들 또래 집단이 냉대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분주함을 정당화하는 흔한 이유는 바쁘게 지내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끊임없이 일하는 것이 건강에 좋기도 하다. 그러나 은퇴로 건강해진다는 사실도 속속 입증되고 있다. 349p
느려지는 것이 다만 신체적 변화를 의미할 때는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노화에서 이 측면은 상당히 복잡하다. "느려지는 것의 큰 축복은 사람, 문화, 일, 자연, 몸과 마음이 서로 깊이 연결되기 위해 시간과 평온함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칼 오너리는 말한다. 356p
교회를 통해 만들어진 사회망은 종교적 믿음만큼이나 유익하다. 363p
늙음을 배운다는 것은 적어도 사회과학만큼이나 인문학과도 친해질 것을 요구한다. 380p
친구가 추천한 두 개의 영화와 드라마가 모두 나이든 여자의 삶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끝까지 보지 못했다. 흥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었고, 친구가 추천한 두 개의 영화와 드라마가 떠올랐다. 그에 대한 답으로 보게 되었다.
한 번도 '늙음'이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들어가는 말부터 충격이었다. 흥미가 없다는 말은 내가 얼마나 이 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지를 말해준다. 여성의 위치를 아직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늙음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언젠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이미 나의 가족이 겪고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늙음으로 인한 차별, 타격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여성이다. 책은 문화적으로 늙음에 대해서, 노인 인구에 대한 공포, 질병, 약물 과잉, 건강한 노화, 그리고 연령차별주의, 여성의 노화까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총체적으로 노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용이 어렵지 않고, 500페이지로 두꺼워보이지만 본문 챕터는 50페이지 단위로 쪼개져 금방 금방 읽을 수 있다. 정말 좋은 책이다.
나이를 기반으로 하는 차별은 인종과 성을 기반으로 하는 차별만큼이나 불합리하고 독단적이며 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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