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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주말의 공사

_봄밤 2018. 7. 21. 23:09



주말이었나, 아니 금요일 아침부터였다. 공사가 시작되었다. 예고 없이 아침 일찍 드릴 소리로. 알고보니 1층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반 층 더 내려간 집의 공사였다. 녹물이 나온다고 했다. 집에 사시는 분이 아니라 일하시는 분들이. 수도 공사라고. 나도 그렇다. 쓰면서도 이게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녹물이라니. 물을 틀면 녹이 든 물이 나온다는 거지. 어디 먼 얘기가 아니다. 30, 40년 된 단독주택, 재개발 지역, 낡아가는 집들. 나가는 사람들. 재개발을 환영한다는 대기업 건설사 현수막이 집보다 높은 데서 펄럭이고. 그리고 밀려나가지 못하는 사람들.  


그 공사는 토요일 아침에도 계속되었다. 녹물이라니, 당연히 공사를 해야지. 그러나 녹물이 나와서 공사를 한다고 해도 시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마침 계단 참에 계시길래 여쭤보았다. 집 안에서 공사를 하고 있으니 밖에 나와 마늘을 까고 계셨다. 혼자 산다고 했지, 자식이 없다고는 안 했다. 딸이 와 있었다. 공사가 언제쯤 끝나는지 물었고, 대답이 돌아왔다. 


곧 끝나요. 

내일 오전이면 끝나요. 작은 계단을 비켜 앉으시며. 


그리고 한 마디가 더 왔다. 

미안해요.


나는 아무 대답 없이 올라갔다. 괜찮다는 말을 할 수 없었고 실제로 괜찮지 않았다. 내가 언제쯤 괜찮아 질 것인지 알면 그만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울컥했다. 억울해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온 말 같았다. 공사에 대한 어떤 말도 없이 상냥하게 물었기 때문에 당황했다. 대답을 듣고, 대답 없이 올라왔다. 뭐라고 했어야 좋았을까. 괜찮아요. 힘드시죠. 녹물이라니요. 이 집도 그랬다는데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주머니 탓이 아니에요-  


해지 않아도 될 말들. 그녀의 것이 되지 않을 말들. 미안하다는 말을 며칠 뒤에도 생각했다. 


공사는 아주머니의 말처럼, 그보다 좀 더 늦어서야, 일요일 오후에 끝났다. 현관 앞 작은 공터를 다 깨고 시멘트를 발랐다. 누가 그걸 못참고 밟았더라. 밟은 사람도 깜짝 놀라서 더 지저분하게 굳었다. 그것마저도 이 동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좀 깨끗하고 완벽하게 말라가도록 둘 수는 없었나. 누가 봐도 지금 막 굳어가고 있는 시멘트를 말이다. 그게 다 말라서 흰색에 가까운 회색이 될 때까지, 아직 반지하, 아니 일층에 사시는 아주머니와 만나지 못했다. 녹물이 나는 처지를 책임져야 할지는 몰랐지. 나는 '미안하다'의 말을 오래 생각했다. 무슨 뜻이었을까. 


그것은 그 말을 해야 하는 예의가 아직 자신의 인생에 존재한다는 것에 몹시 지치는 사람의 말, 그게 시끄러우면 얼마나 시끄럽다고, 곧 끝나니까 나도 힘드니까 좀 그만해달라고, 나도 언제 끝나는지 궁금하다고. 라고 말한다면 속도 응어리 지지 않고 편해졌겠지만 그러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온 자신을 얼마간 상처내며 뱉어야 했던 말.


혼자 사시는데 마늘을 한참 까셨다. 음식을 할 때 마늘이 빠지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주택에서 유일하게 우편함이 있는 집. 날 좋을 때 옥수수며 고추가 나와서 볕을 말리는 집, 며칠째 고지서를 읽지 않으신다. 


이유가 있으시겠지. 

그 이유를 나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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