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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처럼 버스는 삼척을 향해 갔다. 평창에서 잠시 쉬었다가, 동해를 지나서, 도착했다. 삼척의 시내는 아무도 반기지 않는 듯 적막했다. 관광안내소는 닫혀 있었다. 괴발개발 쓴 글씨로 점심으로 자리를 비웁니다. 라고 적혀있는데, 그때가 11시 20분이었다. 점심시간은 1시까지였다. 근처의 배너를 읽었다. 도시를 한 바퀴 도는 관광버스는 아침 9시 반에 출발해서 삼척의 여기저기를 도는데, 하루에 한 대였다. 이미 놓쳤고, 내가 볼 수 있는 건 이 근처의 바다 밖에 없었다.
삼척에 왔는데 왜 바다가 보이지 않는가 생각하며 길을 찾아보았다. 택시로 5분을 가면 삼척해수욕장이었다. 그런데 걸어서는 50분이라고 나와있다. 버스를 찾아보았는데, 삼척 시내에서 삼척 해변으로 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꼴이었다. 배차 시간이 뜨지 않는 버스정류장에서 23번이니 10번이니 하는 버스들을 좀 보다가, 이제 그만 달려야 할 것 같은 버스 한 대가 아무도 태우지 않고 큰 소리를 내면서 내가 있는 정류장을 그냥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삼척에 도착한지 삼십분쯤 흘렀을 때, 편의점에 들어가 삼척 해변에 가는 방법을 물었다. 보통 어떻게 해변에 가시나요. 걸어갈 수 있나요. 걸어가기에는... 좀 멀죠. 하고 웃는다. 그럼 어떻게... 택시 타요. 보통. 밖으로 나와 초콜릿을 까먹으며 심란했다. 삼척 시내와 삼척 해변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가 자동차가 있어서 이 사이를 버스로 이용하지 않는걸까. 삼척에는 관광객이 별로 없거나 이곳에 놀러오는 이들은 대부분 자차를 타고 오기 때문에 차가 없는 관광객들을 위해 택시를 장려하고 있는걸까. 나는 차가 없고 택시 타는 것도 싫어하지만
택시를 잡았다. 오 분 뒤에 바닷가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기사는 해변 근처의 상호를 알지 못했는데 네비를 찍는 것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러나 어쩔 수없이 찍고는 아 거기네, 라는 혼잣말을 했다. 네네 할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바다가 보이자마자 차를 세웠다. 날씨가 굉장히 흐리고 해변에 파도가 높게 쳤지만 모래는 따뜻했다. 해변에 있는 사람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 스무 명중에 한 명이 되어 바다를 좀 보다가, 근처를 걸었다. 두 가족, 혹은 세 가족이 함께 와 쳐놓은 텐트 옆 아이스박스, 수박에 꽂힌 칼. 그건 누군가의 마음이었고 한 쪽에서는 삼계탕이 끓고 있다. 모닥불을 피워 놓았다...
해변에서 한 시간을 그렇게 있다가 쏠비치에 갔다. 저 멀리 파란 성처럼 보이는 곳은 파라다이스였다. 인간을 놀게 하는 건축은 기분을 좋게 했다.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이곳에서는 저 모래가 뜨거운지 어쩐지 하나도 알 수 없었는데 아까보다 더욱 바다에 있었고, 바다의 한가운데 있게 했다. 다시 와야지, 이곳에 와야지. 성처럼 하루를 머물러야지. 워터슬라이드를 즐기는 목소리가 조금씩 부서졌다. 파도치는 소리가 귓속을, 머릿속을 머리카락을 움직였다. 끝내주는 맥주를 마셨다. 잠시 후* 나는 전화해 '삼척'이라고 말했다.
너는 말이 없다가 '오늘은 일요일이고, 내일은 월요일이야'라고 했다. 할말을 잃은 자리에 파도가 쳤다. '나도 지금 삼척'이라고 말했다면 덜 지루했을 것이었다. 바다에 헬리콥터가 떠서 배회했다. 내가 던진 말도 찾고 있었다. 이 바다에 빠지자면 아무도 구할 수 없을 것 같은 바다의 한 가운데서였다.
저녁이 다 되어 해변을 걸어나오니 누군가의 마음이 지겨운 해변의 텐트를 찢지 못하고 수박에 아직 꽂혀 있었다. 컵라면을 먹는 게 맛있어 보였지만 내가 하자니 초라해보여서 근처 가게에 들어가 대구탕 같은 걸 먹었다. 깨끗한 유리 바깥으로 파라솔 아래서 라면 먹는 사람들을 보고 다음에는 라면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그날 그 바다에 조금도 젖지 않았다.
*잠시 후 파티를 위핸 음악 세팅이 있었다. 리조트 사람들은 미러볼 설치에 대해 여러 번 얘기를 했다. 이번에 반응이 좋으면, 내년 사업 계획에 넣죠. 라는 대목에서 잠깐 웃었다. 미러볼. 오늘 밤 파티를 위해 음향과 조명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바다 위에서는 근사하게 이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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