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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슬픈 엉덩이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잠시 그 사람의 얼굴이 걱정되었다. 몸의 어느 부위의 살집과 상관없이 엉덩이가 없으면 당장에 아픈 사람보다 더 안된 처지일거라고 이해했다. 슬픈 엉덩이. 바지가 꺼져버리는 것. 살이 있을 자리에 대신 울어버리는 바지. 주름이라고 하기 뭐하고, 응당 있어야 한다고 여겼던 천이 하릴없이 서로 부대끼고 반질거리는 것. 엉덩이가 있다는 건 왠지 안심이 되었다. 몇 끼 먹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고, 어디 넘어져도 괜찮을 것 같고, 그러니까 죽음과 멀어 보였다.
처음 그린 인골이 어디에 누워 있었는지는 생각나지는 않는다. 몇 백구였을 테니까. 저마다의 뼈로 누워있거나 사라져 가는 뼈를 부여잡고 있는 아주 작은 묘를 들여다 보는 일이 하루였다. 갈비는 안쪽으로 바깥쪽으로 부서지고, 두개골은 목과 분리되어 움직이고, 손가락 뼈는 늘 손이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정강이 뼈는 다행히 건장하군. 그래서 날 만났군. 나는 이걸 기록해야 하고... 가장 곤란한 건 골반뼈이다. 중앙에, 당신의 한가운데의 골반뼈가 바닥과 닿는 면은 의외로 얼마 되지 않는다. 평면도로 그리기 때문에 표현에 한계가 있다. 입면을 그리고 나서야 골반이군, 싶을 정도. 그냥 두면 왠 나비 같기도 하고 고대의 코끼리 귀 같기도 하다. 골반은 굽어있고 휘어있어 저마다의 레벨을 가진다. 그 빈만큼 자를 밀어 넣고 재던 여름, 그만한 살이 있다고 믿어지던 여름.
살아 있으니까 팬티를 입는다. 현장의 안부는 팬티 색을 확인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늘 땅바닥에 쪼그려 앉으며, 어떤 때는 팔꿈치와 무릎이 한꺼번에 땅에 닿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은 발 다음으로 엉덩이가 바닥과 가까울 것. 그렇게 앉으면 바지는 팬티만 못해서 넓은 화살촉처럼 벌어진다. 그리고 매일 바뀌는 팬티색을 아, 말할까 싶다가도 그냥 지나치게 된다. 팬티가 뭐 다 보이는 것도 아니고, 끄트머리는 어쩔 수 없이 보이게 온 몸을 다해 일하게 되고. 대수롭지 않아서 서로 아는 체 않는다. 바지는 누구라도 입을 수 있다. 엉덩이가 없어도. 하지만 팬티는 아니지. 현장 사람들의 살아있음을 생각하며.
저 사람은 아직 엉덩이가 있다. 엉덩이가 있다는 건 아무래도 살아있다는 거니까.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믿어진다. 뼈가 대충 만져질수록 좋은 일. 땀이 살을 타고 가득 흐른다. 그런데 어쩌다가 엉덩이 이야기를 했을까. 모아레를 일으키는 시간이 부서진다. 내가 아는 시간을 함께 알던 이가 사라졌을 때, 그 뒤의 시간은 어떻게 되는걸까? 그 시간에서 나아가야 할 때. 모아레를 일으키며 시간을 갈라 앞으로 나가는 것도 엉덩이, 지키는 것도 엉덩이. 그건 언제나 방향을 정한 사람의 뒤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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