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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정한아
도서관 뒤뜰엔 잊혀진 사상처럼
이끼가 드문드문 자라고 있다
사람들은 소태를
얼마나 오래 머금을 수 있는지
붓꽃과 익어가는 여주와 박꽃과 봉숭아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눈으로만 먹을 수 있는
빛깔들
맛을 보면 도망할 육식동물들을 위해
고통 없는 선을 위해
아름다운 착한 것이 있어야 할 텐데
어쩌나, 가물어 단
과일을 크게 베어 물면
소리 없이 가능한 한 멀리 내어 뱉는
씨앗 같은 문장부호들
왜, 죽음의 징후-꽃들은
절박할 때만 피나, 왜,
아름다운 채 삼키면 치명적인가, 왜,
도서관 뒤뜰엔 아직도 잊혀진 사상이,
웬 조그만 노인이, 우산이끼처럼 까라져
아직 파란 여주를 씹고 있나
신기하게도 이 장면에서 '여주'말고 다른 과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여주가 무엇인지 찾아보아도 알기 어렵다. 여주가 어떤 과일인지 제대로 모르는 게 이 장면의 포인트이니까. '...아직 파란 여주를 씹고 있다'라고 했을 것이다. 나라면. 그리고 '까라져'라는 말은 조금 고민된다. 그러나 '웬 조그만 노인이'라는 구절은 완벽히 동의한다. 그 노인은 작은 것도 아니고 '조그만'해야 하고, 그리고 갑자기 거기 있어야 한다.
트위터에서 오래 유명했다. 안타깝게도 시인의 말이 가장 좋았다. 그 밖에는 글쎄. 도서관에 오래 살아본 자의 위트가 굉장하다는 정도. 한 번 읽어서는 그렇다.
해설은 조재룡. 우선 분량이 굉장하다. 시집의 거의 1/3을 차지하는데, 우선 이런 소리가 나왔다. 일 참 열심히 하시네. 성실이 지루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시간이 그저 양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의 글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잘 안 읽게 된다. 이건 어려운 것과 다르다.
이 밖에. 강성은의 시집<Lo-fi>를 샀다. <단지 조금 이상한>의 다시 1버전과 같았다. 게다가 <단지 조금 이상한>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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