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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김승일

_봄밤 2020. 4. 22. 22:13

 내가 시인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으면 좋겠

다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영상 다큐멘터리 감독이 우리

둘의 일생을 촬영했으면 좋겠다 둘의 철학은 구별된다

너는 나의 태도를 나는 너의 생활을 사랑한다 너와 나는

지옥이 무엇인지에 대해 종종 의견을 나눈다 지옥은 내

가 아직 겪어보지 않은 곳이다 내 관점이고 지옥은 이미

겪은 괴로움을 겪는 곳이다 네 관점이다 내가 맞다 내가

지옥에 가면 나는 거기가 지옥이 아니라고 할 것이고 네

가 옆에 있다면 너는 여기가 지옥이 맞다고 할 것이다 아

니야 여기보다 더 괴로운 데가 있을 거야 너는 지옥에서

도 내 해석을 좋아해줄 것이다 그러나 너는

 

 둘 중 하나가 병에 걸려 먼저 죽으면 다큐멘터리 감독

이 편집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은근슬쩍 한쪽 편을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의 거

처로 영상 다큐멘터리 감독이 찾아온 것이다 그에게 마

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나는 잠시 고심하

다가 손으로 땅을 짚었다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켜 세우

고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고르기아스, 난 항상 왜

네가 누구랑 있는지가 궁금하지? 내 앞에는 아테네의 다

른 모든 시민들처럼 은근슬쩍 너의 편만 들어왔던 감독

님이 서 계시다 너는 지옥에서 누구랑 있나?

 

 

 

 

 

김승일, <여기까지 인용하세요>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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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다큐멘터리 감독이 우리 둘의 일생을 촬영했으면 좋겠다'부터 재미있다. 누군가 이 재미있는 나의 일일을 찍어주었으면, 생각했던 적이 종종 있지 않나. 나는 많다. 지나고 나면 생각이 잘 안난다. 심심할 때 돌려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내 앞에는 아테네의 다른 모든 시민들처럼 은근슬쩍 너의 편만 들어왔던 감독님이 서 계시다" 이것 또한 웃기다. 

 

"너는 지옥에서 누구랑 있나?"

한 문장으로 지옥을 만들었다. 어휴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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