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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정글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거든. 작은 운동장을 돌며 운동하는 분들이 계셨다. 전화를 하며 페달을 밟던 사람이 한 명 있었고, 경비를 보시는 분은 작은 공간에 계셨다. 나는 철봉을 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기를 하려고. 일곱살이나 여덟살 때 내가 잘했던 것처럼 가볍게 뛰어올라 금새 뒤집어진 풍경을 보려고. 그런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기에 너무 오래 서 있었던 탓인지 감히 바닥을 누르고 뛰어오를 수가 없었다. 생각했던 그림이 나오지 않아 당황했고, 좀 더 마음을 먹고 뛰자 억지로 철봉에 걸리게 되었다. 그때는 하나도 안아팠던 것 같은데 허리나 골반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편하지 않았다. 피가 쏠리게 두었다. 검은색 흰색 스프라이트 셔츠를 입고, 구두를 신고, 거꾸로 매달려서 바닥에 있는 모래를 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벚꽃이 다 졌고, 연두색의 이파리가 하늘거리는 나무들이 보였다. 학교와 가까운 주택가에 작은 창문들이 있어 그곳에서의 풍경을 생각했다. 초등학교 가까이 집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하지만 철봉에 뒤집어져서 매달리는 사람을 보는 일은 기분이 좋지 않겠지. 그래서 반대로 매달렸다. 역시 이것도 유쾌하지는 않겠지. 매일 매달리지는 않겠다. 나를 알아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오래 매달렸다.
정글짐은 보기만 했다. 저 위에 올라가서, 올라가는 것만으로는 모자라서 꼭대기에서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게 좋았고,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서는 정글짐의 꼭대기에 있던 나를 바라보다가 머리카락이 쓸릴까 말까하는 모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초등학생으로 여겨지는 아이들 둘이 나를 둥글게 멀리 돌아와 시소에 앉았다. 걸터 앉아서는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여전히 매달려 있고, 스프라이트 셔츠가 가볍다. 너는 학원 몇개 다니냐. 나는 그거 한 개. 그리고 이거. 야 그러면 학원 두 개라고 해야지. 그런가. 나도 두 개 다녀. 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들었고, 나는 빙그르르 돌아 바닥을 다시 밟았다. 아이들은 없고, 페달을 밟는 사람도 없고, 경비 보시는 분은 학교의 다른 곳에 가셨는지 보이지 않고. 다음에는 정글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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