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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에 대한 인상 

아니 수영장에 대한 인상 아니 

물에 있기 위한 사람들에 대한 인상


같은 물에 수십의 사람의 몸이 있다.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온몸이 물에 들어가는 데, 나는 수영을 한다는 말에 이 당연한 것이 얼마나 당연히 포함되는지를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이 물을 공유한다는 것을 그간 몸으로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수영에 대한 몇 가지 기대가 얼마나 막연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게 된다. 숨을 쉬기 위해 공기를 자연히 마시고 뱉는 것처럼, 물 속에서는 코로 숨을 쉬고 수면에서는 입으로 숨을 마신다. 얼마간의 물을 당연히 마시게 된다. 그리고 뱉게 된다. 공기를 공유하듯이 물을 공유한다. 첫 날 무척 어려웠다. 


수영장 수심은 130cm. 물의 경계가 머리카락이 붙은 듯 간지럽다. 첫 날은 발장구만 쳤는데 바깥으로 올라와 디디는 발이 무거웠다. 영화 그래비티의 마지막 장면처럼,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이의 첫 발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무겁고 휘청거렸다. 씻을 때도 한 발 한 발 몸이 크게 움직였다.


온 몸이 물과 닿는다. 물에 산다면, 물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굉장히 조심했을 것 같다. 이 말에도 얼마나 편견이 담겨 있는지. 물에 살던 이들이 공기로 올라오게 되면 마찬가지로 다짐했을 것이다. 먼지를 내는 것도 조심했겠지. 대체로 물에 사는 것들이 조용하거나, 물에 사는 이들의 소리를 공기에 사는 이들이 이해할 수 없음을 자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물 속에서 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언어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물을 지나기 위해서 팔과 다리가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머리가 무거운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숨쉬기와 걷기를 배우고 있다. 완전히 다른 공기에서, 다른 몸으로 살기 위한 연습을.


끝나고 나오는 길에 눈이 내려도 파카 앞을 올리지 않아도 되었다. 춥지 않은 몸과, 움츠리지 않아도 되는 몸. 따뜻한 몸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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