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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를 가기로 한 것은 나태하고 지루한 겨울을 다 보내고 나서였다. 봄이 쳐들어왔지만 따뜻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여전히 가스요금은 10만원에 가깝게 나왔다. 봄이 어떤색인지 보러가자. 남쪽에 가자.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산수유나무를 보기 위해서 구례를 찾아보았으나 산수유 축제는 3월 말에 이미 끝난 후였다. 산수유가 나무라는 것은 알고 있어, 꽃이 다 졌더라도 나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면서 그 나무를 보기 위해 구례에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아직도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의 차이를 알지 못해 처음에 고속터미널로 검색했더니 하루에 한 대만 구례에 가는 것인 아닌가. 무척 어려운 장소에 가는 희열이 느껴졌고, 꼭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산수유마을


그런데 다시 찾아보니 서울-구례는 거의 한 시간 반마다 버스가 있었다. 시외터미널로 검색, 남부터미널에서 우등버스로만 움직이며, 3시간 걸린다. 두시 간 버스를 타고 휴게소에서 십오 분 정차. 그리고 조금 더 달리면 구례에 도착한다. 버스는 구례를 지나 하동, 진주까지 가는 것 같다. 때문에 구례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갈 곳의 표를 끊어놓는 것이 좋다. 적어도 이렇게 세 곳에서 사람들이 이동하기 때문에 자리는 쉽게 매진된다. 나는 심지어 평일에 구례에서 출발했는데도, 2대를 매진으로 보내고 세 번째의 버스를 겨우 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세 시간 후에나 버스에 탈 수 있었다. 표를 끊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서울남부터미널


구례를 가는 이유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다 끝난 산수유축제) 그곳에서 1박을 한 것에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실은 그곳에는 '구례옥잠'이라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희안하게도 나는 이 집이 지어지는 광경(!)을 몇 년 전에 본 적이 있다. 리모델링, 인테리어를 자주 본 덕분이다. 부부가 운영하는 곳인데, 블로그에 리모델링에 대한 고민, 게스트하우스를 꾸미는 일들, 집이 지어지고 완성되는 모습을 보았다. 직접 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떻게 알게 되어, 언젠가 지어지면 한 번 가봐야지 싶었는데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도 무척 좋았던 것. 구례 터미널과 가깝고 한옥을 개조해 마당이 예쁜 곳이었다. 예약은 주인가 직접 소통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 계좌이체만 가능했다.


구례옥잠


그렇게 구례에 가게 되었다. 다 끝난 산수유축제, 5일장, 그리고 구례옥잠. 이것이 내가 구례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이쯤에서 끊고 다시 써야할 것 같지만 그냥 이어서 써야겠다. 구례에 가는 버스는 너무나 평화로웠고, 세 시간을 삼일인 듯 보냈다. 한옥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 주위에 벚꽃이 있어 벌써부터 마음이 선득선득했다. 


오일장은 터미널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움직이는 동안 동네의 분위기를 익혔다. 농협이 이곳을 거의 책임지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5층 이상의 건물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아파트가 없는 것 같았고, 지방선거를 대비한 현수막이 읍내 곳곳의 큰 건물에 굉장하게 걸려 있었다. 모두 더불어민주당의 예비후보였다. 서로 다른 캐치를 내세우며 구례시민들에게 자신을 호소하고 있었는데 그 예비후보의 숫자가 다섯은 되는 것 같았다. 오일장에 대한 인상은 특별한 게 없다. 이 한산한 거리에 오일장마저 없다면 그 적막이 어떨지 상상해 보는 정도. 10대의 아이들과 20~30대 청년들의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우리처럼 구례에 놀러온 젊은이(?)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있었다. 


산수유 마을에 가기 위해 표를 끊었다. 팁 같지도 않은 팁이 있다면 터미널에서 표를 끊을 필요가 없다는 것. 산수유 마을 동네를 물어본 후 버스에 오르면 된다. 티머니가 잘 된다. 이곳에는 ○○마을로 동네를 부르는데, 산수유 축제가 열리는 마을은 구례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있다. 버스로 한 시간 넘게 가야하고, 금액은 2200원이다. 구례의 마을버스 정차시간은 보통 2분. 내리는 인원은 보통 1~2명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 버스의 주요 이용객이었다. 그들은 골골이 자신의 동네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고, 천천히 내렸다. 아니 천천히라는 말은 옳지 않다. 그들의 움직임에 맞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산동마을. 오래된 나무가 마을 곳곳에 있는 오래된 시간을 갖고 있는 마을이었다. 지리산이 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산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마을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간판이 보였다. 아무도 없는 차부가 있었다. 쇼파 몇 개가, 이곳에 몇 대 없는 버스 시간을 표기한 알림만이 있는 쓸쓸한 장소였다. 구례의 아주 깊은 곳에 들어왔고, 산수유 공원으로 걷기 시작했다. 걸을 때는 몰랐지만 그렇게 조성하지 않고는 눈에 띄지 않는 지방행정의 결과, 전시의 슬픈 면면을 보러가는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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